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한반도는 여전히 경계(境界)에 서 있다. 대륙과 해양의 경계, 동서 냉전의 경계, 미국과 중국 양강(兩强)의 틈바구니에 놓여있는 이 지정학적 위치는 끊임없는 자기갈등과 모순, 외줄타기의 균형을 생존의 조건으로 요구했고, 외교적 주변성을 강요했다.

그러한 대외적 조건 속에서 정부는 한때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기도 했지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G2를 포함한 메이저 4강에 둘러싸인 현실에서 스스로 '균형자'가 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고, 실상은 균형을 통해 생존과 실리를 모색해야 했던 것도 현실이다.
한국이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 공유하고 있는 '안보이익', 경제적으로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경제적 실리'는 그 어느 하나를 기회비용으로 맞바꿀 수 있는 선택과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외교에 있어서 균형적 실용주의적 접근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국가간 관계가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단면적인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군사적·문화적 요소를 망라하는 포괄적이고 중층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외교적 실리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과 정책적 결정은 더 많은 현실적 고려와 더 깊은 전략적 판단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략적 균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FTA'를 매개로 한미동맹에 기반한 전략적 안보동맹으로부터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포괄동맹으로 확대되고 있는 한미관계에 상응하는 만큼의 한중관계에 있어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생산력과 구매력에 기반하고 있는 중국경제는 달러화의 지배력에 기반하는 미국과 더불어 이미 세계경제의 패권을 양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최소한 동아시아 역내(域內)에서 미일동맹과 더불어 주도권 경쟁을 벌일 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안보적으로 긴밀하고 중요한 파트너십의 대상이라는 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은 더 이상 최대교역국이나 경제적 우방의 지위에 그치지 않는다. 한미관계가 안보동맹의 파트너에 국한되지 않듯이, 한중관계 또한 시장주도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별개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중국은 적극적인 투자외교를 통해 역외(域外)로 위안화의 지위를 강화하고 막대한 자국 자본력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후(戰後) 서유럽 복구와 대규모 원조를 통해 생산력 과잉을 해소하고 자본주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했던 미국의 '마샬플랜'처럼 중국은 실크로드를 재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는 중이다.

여기에 중국은 지난해 국방비로 1,122억불을 쏟아붓는 등 미국이 군사전개의 중심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아시아 회귀 전략'과 '재균형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양국의 이같은 움직임이 역내에서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안보딜레마를 유발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국제적인 군사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해군력을 중심으로 중국의 군비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이같은 차제에 미국은 적극 지지하고 중국은 절대 반대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와 미국이 사실상 반대를 표명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참여를 결정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안보와 경제가 충돌하는 현재의 외교적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는 양국의 세력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의 외교적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지고 해법은 더욱 더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입장은 주로 미국과 관련하여 안보적 이익을, 중국과 관련하여 경제적 이익의 획득을 모색하는 구조에 놓여 있었지만, FTA 그리고 THAAD와 AIIB에는 정치적 군사안보적 변수와 경제적 변수가 혼재돼 있고, 상황은 그만큼 복합적이며 유동적이다.

THAAD를 통해 굳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도 없고,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AIIB를 포기해야 할 것도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다시 한번 꼼꼼히 손익계산을 해야 할 때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상호이익을 전제하여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미래 한미관계나 한중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략적 실용주의, 외교적 균형 같은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