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사업소 가는 길(14) 사관장은 뭔가 착각하고 있은 듯 되물었다.

 『오늘, 금촌군 전체가 정전일입네까?』

 지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력을 가리켰다.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는 달력에는 정전일마다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지도원은 한 달에 열흘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양정사업이 안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공화국 전력 사정 때문에 전연지대 식량공급사업마저 어렵게 되었군. 전기 들어오면 밤중에라도 입쌀은 싣고 갈 수 있갔습네까?』

 『출고지도서가 나갔는데도 량곡이 나가지 못한 기관이 많아서 그건 잘 모르갔소. 지배인이나 기사장 동지를 만나 보시오.』

 『지도원 동지! 공화국 최전방을 사수하는 민경부대한테 량정사업소가 이거 너무 하지 않소. 정말 지도원 동지가 무책임하게서리 기러케 말해도 되는 겁네까?』

 사관장은 따지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손가방에서 담배를 열 갑 꺼냈다. 지배인과 기사장 동지를 만나 사바사바 해볼 테니까 정확하게 양정사업소 형편만 말해 달라고 하는 뇌물이었다. 그래야 사관장도 사단에다 전화를 걸어 이쪽 사정을 알리고 다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수급과 지도원은 군관들에게 공급되는 고급 려과담배(필터담배)가 나오자 이내 자세가 달라졌다.

 『경리사관 동지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공화국은 지금 전력 사정이 악화되어 후방지대 기업소는 월평균 70% 정도밖에 가동이 안되고 있는 실정입네다. 각 기관마다 식량을 수령하러 와서 죽치고 있으니까니 우리도 죽을 지경입네다. 모두가 도정력량의 한계 때문에 빚어진 일이니까 너무 오해 마시고, 기사장 동지와 지배인 동지를 만나 보시라요. 최전연에서 수고하시는 동지들께는 우리도 최대한 잘 해드리려고 노력합네다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말쌈질을 하다보니 내가 오늘 과민했던 것 같습네다. 리해하시라요.』

 수급과 지도원은 그때야 의자를 내놓으며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사관장은 수급과 지도원의 책상 서랍을 열어 들고 있던 담배를 넣어주며 나즈막하게 물었다.

 『창고에 정미된 입쌀은 없습네까?』

 『녜. 불 들어오면 전연에 보낼 팔분미는 별도로 작업을 해야 합네다. 일반 사회기관에 보내는 육분미는 좀 있습네다만.』

 『어젯밤 큰 비에 도로사정이 악화돼 오밤중에 이동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는데, 어케야 좋을까?』

 『부대에 전화를 걸어 이쪽 사정을 먼저 알리고 어디 가서 좀 주무시라요. 요사이 우리 사업소 정미 일꾼들은 모두 낮에 잡네다. 불 들어오면 만가동을 하기 위해서요.』

 사관장은 도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대에 전화를 걸기 위해서도 지배인(사장) 방이나 기사장 방으로 들어가 인사부터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렇잖으면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지도원을 뒤따라 먼저 지배인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