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연 다지음한글구성성명학회회장
있는 것도 돌림자만을 고집하는 바람에 격이 떨어진 이름을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성, 같은 혈족에 대한 촌수 관계를 알기 위해 이름자 속에 넣어 쓰는 고정된 글자가 돌림자, 또는 항렬자(行列字)이다. 그래서 어느 문중, 어느 파(派)의 몇 대 후손으로 그 가문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권하면서 항렬의 순서를 오행으로 맞추어 나갔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수(水)가 들은 글자(洙, 渽, 泌, 渼…)를 썼으면, 아들은 수생목(水生木)으로 木자 있는 글자(根, 杞, 林…)를 쓰도록 정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어떡해서든 이름만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아집으로 꼭 돌림자만을 고집하여 짓겠다고 하면 끝까지 인내를 갖고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권한다. 그래도 안 될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돌림자를 넣어 지어주고 있지만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성(姓)이야 조상이 물려준 것이니 나빠도 어쩔 수 없지만 항렬이나 돌림자는 당사자의 운명에 흉한 기운을 미치면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굳이 운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돌림자에 연연해 내 귀한 자식이나 본인의 일생을 망치게 하는 어리석음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이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항렬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옛날에는 자신들이 만들어 낳은 씨족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또는 조상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항렬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름을 사용케 했다. 즉 나는 어느 성씨의 시조(始祖)이며, 어느 문중의 어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드는 대로 항렬을 맞추어 사용하라는 뜻에서다.

그래서 본관과 돌림자만 되면 촌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현대는 컴퓨터의 다변화로 지구촌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름에 굳이 돌림자나 항렬을 고집해 넣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반문해 보는 바다.
이름을 짓는다고 할 때, 이름은 운명의 길흉을 결정하여 주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항렬을 고집한다고 하면, 시간을 갖고 설득하여 제대로 된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종용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타고난 사주가 물질적인 풍요를 타고 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름에 재물운을 풍성하게 넣어주면 그 또한 무한한 덕이 될 수 있다.
한마디의 말이나 물질로써 선을 베푸는 것도 좋지만 좋은 이름으로 개운 시켜주는 것도 사랑이고 자비고 은혜로움이다. 사람이 어리석어 마땅하게 깨어나지 못할 때 좋은 말로써 그를 깨우쳐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위급한 지경에 빠졌을 때 헤쳐 나올 수 있는 조언과, 또는 도움 되는 말을 해주어 위난(危難)에서 구해주었을 때, 혹은 물질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든 행위 자체가 덕이고 복 쌓는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가치는 좋은 이름을 지어 당사자의 운명을 개운시켜주는 일이다.

사람이 버러지나 금수와 다른 것은 생각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줄 알고 진리를 행하며 미래를 희망하고 노력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이상이 있고, 그 이상은 단순한 삶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적 희망의 성취를 위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