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산업사회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풍요와 빈곤을 극명하게 하고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지구는 망가져가고 인간조차 불필요한 존재로 내몰리고 있어, 편리함과 윤택함의 추구가 오히려 인간의 행복을 빼앗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득실이 인간관계를 지배하여 가족마저도 해체되고, 자유와 인권이 잘못 주창되기도 하여 정도가 무엇인지 혼돈의 사회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기업의 성공이 국민을 먹여 살린다며 부작용을 방치한 체 성장만을 채찍질 해왔지만, 성장에도 한계가 오고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찾아내야 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의문이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인문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시대적 흐름과는 반대로 정작 인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이 어찌된 일인지 인문학을 폐해야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어 놀랄 따름이다. 대학의 변혁을 선도하는 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지, 인문학의 가치가 대학에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에서 어떤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학이 모를 리 없다. 흔히 문사철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인문학분야는 외국어문학을 포함한 문학, 역사, 철학 등으로 구성된다. 영어능력이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회이지만,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도 인문학을 대표하는 분야로, 이런 인문학의 추구 없이 글로벌시대의 경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해외에서 공학이나 사회과학, 예술체육 등 그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해당국의 인문학적 지식 없이는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외국어의 습득 없이 외국의 그 어떤 것도 취할 수 없는 것이다. 언어란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철학, 사상 등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그런 총체적 학습인 외국어의 습득은 그 나라와 이해하고 교류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듯이 언어란 인간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때론 화나게도 하여 철천지원수로 만들기도 하는 무기인 것이다.

외국이란 언어뿐 아니라 예절, 사고방식, 행동양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다른데, 얄팍한 지식 탓에 외국에 대한 엉터리 같은 정보가 범람하고, 그로 인한 오해와 편견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역사왜곡 문제 등에 분개하지만, 이 또한 인문학적 지식 없이는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만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 그것도 해당하는 시대의 문헌을 소화해낼 수 있는 전문 지식인이 있어야 만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소통 능력을 높이고 바른 마음의 배려심 있는 인간을 지향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높이고 질서 있고 범죄 없는 건전한 사회를 제시한다. 전인교육의 기본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인기가 없다하여 기초학문인 인문학 분야를 축소하거나 없애려 한다니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의 쇠퇴에는 인문학도들의 취업에 제한을 두는 기업의 책임도 크다. 사회에서 일하는데 대학의 전공능력은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인문학도들은 외국어능력뿐만 아니라 사고력과 논리력으로 어떤 일이든 쉽게 적응해낼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자들로 사람들과의 소통능력도 뛰어나다. 어떤 업무가 주어지든 재빠르게 적응하여 해낼 수 있는 공통분모의 기본 능력을 훈련하는 것이 기초학문을 하는 인문학도들인 것이다. 제대로 된 인문학도라면 일반사무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 어떤 직장의 어떤 일이라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요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취업에 전공분야를 제한하는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요즘의 학생들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이라면 전공에 상관없이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 전공이라는 형식에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업이 어떤 변화에도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기초능력을 보지 않고,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을 요구한다면,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다양한 인문학도를 활용하게 되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어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학이란 모든 분야의 발전에 이론적 근거나 기반을 제공하는 연구와 교육을 하는 곳인데, 기업처럼 당장의 이윤만을 바라보듯 변화시키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한국인이 유엔사무총장 등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한국기업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외국어를 포함한 인문학적 지식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