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노동자 5명 사망, 주민 1만여명 병원치료, 가축 4000여 마리 폐사, 212㏊ 농작물 고사. 지난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의 제4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공장에서 플루오린화 수소 가스가 유출돼 발생한, 일명 '구미 불산 누출사고' 피해 기록이다.

우리나라에는 41개의 국가산업단지가 있고 503개의 지방산업단지가 있다. 그 중에서 각각 22%와 12%가 주거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공식 집계된 화학사고가 2013년에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 87건, 2014년에는 충남 금산 무수불산 사고 등 100건이 넘는다. 경기연구원의 2014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경기지역의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의 절반도 기본적인 방제장비나 관리책임자를 갖추지 않고 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설비노후 등으로 화학사고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주거지 인근까지 화학물질 취급장이 확대되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학물질은 분해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매체별 확산이 가능하며 미량으로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계적으로 8800만종의 화학물질이 개발돼 12만종이 상업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4만여종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학물질은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관련 정보 파악과 철저한 관리가 필수인데 그동안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은 지금까지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화평법'이라 불리는 이 법에는 제조·수입자에게 화학물질의 유해성·위해성 정보를 사전에 등록하도록 하고, 유해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에 대해 안전기준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매년 취급자에게 화학물질의 용도, 특성, 유해성·위해성 등 정보를 등록하고 화학물질의 제조·수입·판매 현황을 보고하게 함으로써 화학물질을 관리하겠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유럽연합에서는 2007년, 일본과 중국에서는 2010년부터 정보가 없는 화학물질은 시장출시를 금지하고 있다. 'No Data, No Market'이 이미 국제적 화학물질 유통의 기본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화평법 시행과 함께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일명 화관법)도 올해부터 시행된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이제라도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 주변에 유해성·위해성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시설들이 적지 않다. 주유소, 공장 등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시설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주민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이런 시설들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한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꼼꼼하게 관리 감독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관련 제도의 정착과 함께 주민 스스로가 화학물질을 바르게 알고 직접 감시 등 화학물질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과연 주민들은 화학물질 취급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유해성·위해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지, 얼마나 많은 양을 취급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아니다. 또 중앙정부와 지자체, 취급업자들은 관련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을까? 아니다. 행정 기관은 자료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자료조차 접근을 꺼리고 있다. 취급업자들은 핵심자료를 감추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한다.
2014년 12월 환경단체와 주민은 인천 서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서구청과 인천시가 SK인천석유화학공장 사후환경영향평가서의 절반이상을 비공개했기 때문이다. 인천시와 서구청은 개인정보, 영업 비밀을 이유로 환경평가서를 비공개한 것이다. 사업자와 지자체는 안전과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는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주민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No Open, No Trust 공개하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다.
신뢰가 없으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와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의 해소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