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한국방재협회장
얼마 전 새벽에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대화아파트 도로 옹벽(길이 140m, 높이 15m)의 일부 붕괴로 1000여t의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차량 40여대가 매몰되고 아파트 단지 내 주민 4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행이 뜸한 새벽시간대에 발생하여 통행하는 사람이 없어 추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사고 역시 세월호 침몰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의정부 대봉아파트 화재사고 등과 마찬가지로 '안전상식'이 실종된 전형적인 인재인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일반적인 건축·토목구조물 특히 재해예방시설물의 경우는 '계획단계', '시공단계', '유지관리단계'로 크게 나누어서 단계별로 소유자나 관리주체가 관리하게 되는데, 단계단계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기본원칙만 지켰더라면 이번 붕괴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계획단계에서의 '안전개념 부재'이다. 당초 아파트 단지와 불과 10m 떨어진 지점에 제석산을 깎아 수직으로 옹벽 구조물을 계획한 것은 마치 재난이 발생하기를 계획하고 기다린 결과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아파트 공사 준공 인허가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의심스럽고, 제대로 된 안전의식을 가진 공무원과 전문가들이었나 하는 의구심 마저 든다.

특히, 시공단계에서의 총체적인 '부실시공'이다. 이번 사고를 지켜 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아파트 옹벽 붕괴사고가 옹벽차제의 구조적 결함에서 온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수직에 가까운 20m 정도의 전체 높이를 감안한다면 2중 옹벽으로 시공하거나 옹벽두께도 현재보다 더 두꺼워야 하며, 토사를 버티는 옹벽 구조방식도 현재와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배수관 폭 20cm x 20cm 도 전체 옹벽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어느정도의 비가 오면 배수관이 넘쳐 옹벽으로 흘러 붕괴를 촉진시킨다. 시공사와 감독기관의 안전불감증과 부실시공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유지관리단계에서의 '무관심'이다. 사고가 발생한 옹벽은 1993년 아파트 준공과정에서 도로 개설시 설치된 시설물로 건설사로부터 남구청으로 이관되어 소유·관리하고 있었다. 그 이후 소방방재청(현재 국민안전처) 소관 법률인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부터 'B'등급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데, 'B'등급은 해당구청에서 일반적으로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어서 평범하게 관리되는 수준이다. 작년 여름에 아파트 단지 내 주민들 사이에서는 배수관 고장으로 옹벽 위로 물이 넘치는 등 위험성 징후가 나타나 담당 구청에 조치를 요청했지만 해당 부서에서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배수관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옹벽 바닥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식'수준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치를 했을 것이란 사실은 이번 사고를 더 어이없게 만드는 사실이다.

재난안전관리에 있어서 사고의 원인이 어떻게 연쇄적 반응을 일으키는 가를 설명한 이론으로 '도미노 이론'이 있다. ① 선천적 결함 ② 인간적 결함 ③ 불안전한 행동이나 상태 ④사고발생 ⑤재해초래 등의 과정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난 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재난이 발생하기 이전에 불안전한 상태나 결함을 제거하면 충분히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20년 넘게 세워진 옹벽을 당장 철거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사고 옹벽에서 위험징후 발생 즉시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안전점검이나 간단한 응급조치, 더 나아가 충분한 보수·보강을 했더라면 하는 재난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우리나라 재난안전관리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현재 국민안전처와 지자체는 앞 다투어 해빙기를 대비하여 축대와 옹벽, 급경사지, 절개사면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당장의 안전점검도 중요하지만 모든 재난위험시설물의 지정과 관리방식도 이제는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할 것이다. 특히,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오는 재난분야 특단의 대책은 사고가 터진 이후에 갑자기 행정당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안전사고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깊이 있게 로드맵을 마련하여야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