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인천대 교수
무릇 사람은 말이 신중해야하고 또 그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말은 신중함을 넘어 역사적으로 엄청난 무게와 책임을 가진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정치권은 물론 사회전반에 파장을 낳고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책의 판매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상당히 성공한 것 같다. 물론 실제로 책을 구매하는 것과는 별개이겠지만 말이다.
출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진 주요 내용을 보면 국익은 물론 힘든 사회적 분위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같은 여당 내에서 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은 물론 현직 대통령조차도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알려진 책의 내용을 보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화가 난다. 더구나 이번 회고록은 MB가 혼자 쓴 것이 아니고 집권당시 참모들이 모여서 쓴 집단회고록이라고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그렇다면 더 큰일이다. MB 한사람도 힘든데 주변인물들이 집단으로 이런 내용의 정치를 하였다면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고 허망한 세월 살았다는 것인가에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에 관한 내용이나 중국과의 외교비사의 공개 내용은 국익은 물론 재임기간 동안 그토록 외치던 국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언급된 당사자들이 아직도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거나 언급된 외교적 사안이 현재 진행형이라면 그에 따른 외교적 파장과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쇠고기 협상을 전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내용에서는 MB 정권 내내 보아왔던 '네 탓이요'의 전형을 다시 보게 된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흘렸다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으며, 밤새 읽었다든 민심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민심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문제를 언급하며 현 정권과의 정치적 대립을 조장하는 내용은 세금폭탄과 함께 오른 담뱃값에 한숨 쉬는 국민들의 눈에는 '도긴개긴'의 쌍생아 정권들의 추잡한 정쟁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다시 담배 한 개비와 소주 한잔을 찾게 된다.
지원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평가자체가 시기상조라면서도, 그 책임은 당시 국무총리에게 떠넘기는 모습에서는 치사함과 분노를 넘어 이런 대통령과 5년을 살아온 우리들의 시간이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행여 국정조사를 앞두고 청문회 출석을 막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면 청문회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5천만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2조의 국고를 탕진한 4대강 사업이 세계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게 하였다는 대목에서는 작년에 4대강 주변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여러분들도 이렇게 좋은 4대강 경치를 즐겨보라"고 국민을 희롱하던 MB의 모습이 떠올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국정조사에서 4대강을 제외시키도록 합의한 여당은 물론 무능한 야권도 용서할 수 없다. 4대강 사업은 반드시 국정조사에 포함되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회고록이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후대에 전하는 기록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회고록은 그 시대의 역사적 기록이다. 철저히 역사적 사실과 실체적 진실에 기반을 두어 쓰여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MB의 회고록은 불필요하거나 외교상의 많은 문제점은 세세히 기록하거나 왜곡하면서, 온 국민은 물론 세계가 궁금해 하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과 지난 대선의 국가기관 개입 문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가 지금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회고록이며, 영국 처칠수상의 '제2차 세계대전'이 회고록으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례에서, 정치인의 회고록이 자신의 업적에 대한 과대포장이나 과오에 대한 비겁한 변명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MB와 그 주변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정권에서도 충분히 힘들고 화가 나는 국민들에게 지난 쌍생아 정권까지 나서서 염장을 지르겠다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MB에게 고언을 드린다. 그냥 가만히 계시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 더 이상 자극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그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다. 머지않아 시대가 평가하고 심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