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선 인천만수고 교감
학창시절 하이틴 영화에 심취했던 나는 영화보기가 취미다. 나는 지금도 300여 편의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죽은 시인의 사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과 같이'학교'라는 틀을 통해 사회의 모습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영화가 교사인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이러한 영화 중 내가 가장 아끼는 영화는 대만(타이완)영화 <로빙화>(魯氷花)이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물길을 가르는 배의 뒷전에 부서지는 물살이 이어진다. 저 배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저 물살의 의미는 뭘까? 관객들이 의문을 품게 될 쯤 배를 타고 있는 맑은 표정의 한 사내가 보인다. 시골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는 곽이라는 성을 가진 그가 갖고 있는 기대감과 그가 부딪히게 되는 물살들, 이를테면 경직된 관료적 학교, 정의롭지 못한 사회, 꿈도 희망도 없는 소작인 아버지와 어머니 없는 '아명과 차매'의 가족 등이 영화의 서사로 짜여 진다. 영화는 곽 교사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가는 것은 아명과 차매 오누이다. 아명은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개구쟁이다.

그러나 그의 소질은 아직 진흙 속에 묻힌 보물일 뿐이다. 지주의 아들 '지홍'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학교현실은 그 진흙을 더 굳게 만든다. 슬픔이 안개처럼 낀 마을에 곽 선생은 햇살로 찾아온다. 한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그를 알아주는 교사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곽선생은 무엇을 그리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그리라고 자유를 준다. 그리고 아명의 천재성을 발견한다. 휴일이면 아명의 손을 잡고 그림을 그리러 들로 나간다. 아명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슬픔 속에 찾아온 새로운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명을 세계미술대회에 보내려는 곽선생의 의견이 좌절되고, 이장의 아들이 대표로 선발된다. 상처를 받은 아명은 병으로 쓰러지고 곽은 '찻잎을 갉아 먹는 벌레'라는 아명의 그림을 지닌 채 학교를 떠난다. '세계아동미술전'에 아명의 그림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아명의 주검 위에 던져진다.
학교에선 축하식이 열리고 교장은 마을의 전설까지 들먹이며 천재의 탄생이 자기 때문인 양 떠든다. 비탄에 젖은 아버지는 상장을 찢어버리고, 누나는 동생이 남긴 그림을 태운다. 그림은 재가 되어 흩어진다. '로빙화'라는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한다. 여름에만 잠시 피웠다 지는 로빙화는 지금은 지구상에서 멸종된 꽃이다. 영화 속'로빙화'는 꿈과 재능을 펼쳐보지 못한 아명의 짧은 생을 상징한다. 영화는 나에게 우리들의 학교와 교사를 다시 보게 한다. 닫혀버린 비민주적 학교, 거기에 순응하는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발견에 어느 정도 고뇌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는 붕어빵 찍기 교육인 입시 위주 교육, 비인간화 교육, 아이들을 가두어놓은 교육,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교육, 아이들이 죽어가는 비민주적 학교 문화를 그리고 있지는 않는지 이제 우리 교사들이 경직된 관료적 학교문화와 이를 지향하는 교육 관료들의 생각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바라는 많은 교사들이 곽교사가 되어 주길 희망한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민주적 학교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재가 되어 흩어진 아명의 그림처럼 우리 아이들의 꿈과 끼가 로빙화가 되어 사라지기 전에 교사들이 우리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학교가 그려지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