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23>교동의 누정시(樓亭詩)②
 눈[目]에 기대어 대상을 응시하려면 '눈돌리기[游目]'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에 관찰자가 위치해야 한다. 이른바 누(樓), 정(亭), 대(臺), 각(閣), 전(殿), 헌(軒) 등이 그런 공간이다. 특히 사방이 트이도록 건축한 누정은 사면의 경치를 마주하기에 적합하다. 그곳에서 관찰자는 눈돌리기[游目]를 하며 산수의 경치와 흥취의 본질에 관한 어떤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눈돌리기[游目]'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이 직접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감상하는 경우이고, 나머지는 시각만 움직이는 것이다. 후자는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굽어보기, 올려다보기, 가까이 보기, 멀리 보기,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보기 등이 있다.
 
 承恩出守繼家聲(승은출수계가성) 은총 입어 통어사로 나가 집안 명예를 이었으니,
 任重圻西水使營(임중기서수사영) 책임 무거운 근기(近畿) 지방의 수군절도사라네.
 梱外風雲聽老將(곤외풍운청로장) 병영 밖의 풍운은 노장에게 듣고,
 海中鐵鉞列親兵(해중철월렬친병) 바다에서 병기 들고 직접 열병(閱兵)하였네.
 戰船明月魚龍靜(전선명월어룡정) 달밤에 전함(戰艦)이 뜨니 어룡(魚龍)마저 조용하고,
 畵角寒天樹木鳴(화각한천수목명) 찬바람 피리소리에 나무도 움직이네.
 吏退官閑樓上飮(이퇴관한루상음) 퇴근 후엔 누각에 올라 한잔 마시나니,
 雪晴松島夜烟生(설청송도야연생) 눈 개인 송도엔 저녁연기 피어오르네.
 
 1859년 10월~1860년 4월까지 통어사(統禦使)로 있던 오길선(吳吉善)이 교동의 안해루를 소재로 지은 누정시이다. 수군절도사의 임무를 맡은 작자는 집안의 명예를 이었다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에 따라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자 '병영 밖의 풍운은 노장에게 듣고, 바다에서 병기 들고 직접 열병(閱兵)'을 했다. 그에게 안해루는 문루 및 군사 기능을 하는 공간이었다. 한편 '퇴근 후엔 누각에 올라 한잔 마시'며 '눈 개인 송도엔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것을 눈돌리기[游目]에 의해 포착한 것으로 보아 안해루는 유흥상경[遊息]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자에게 안해루는 군사적 기능과 유흥상경[遊息]의 기능이 공존했던 누정이었다.
 다음은 공북루를 소재로 삼은 이건창(1852~1898)의 누정시이다.
 
 江南有此好樓臺(강남유차호루대) 강 남쪽에 이처럼 좋은 누대가 있어,
 北客初隨鴻鴈來(북객초수홍안래) 북쪽 길손은 처음으로 기러기 따라 왔네.
 粉堞丹甍逈超忽(분첩단맹형초홀) 흰 성가퀴와 붉은 용마루는 저 멀리서 초연하고,
 白沙翠壁紛縈迴(백사취벽분영회) 흰 모래와 푸른 절벽이 어지러이 둘러싸고 있네.
 關山千里一翹首(관산천리일교수) 변방의 천 리를 한번 쳐다보고,
 風雨重陽獨擧杯(풍우중양독거배) 비바람 치는 중양절에 홀로 잔을 든다오.
 聖主不知臣不肖(성주불지신불초) 임금은 신하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는데,
 繡衣使者何爲哉(수의사자하위재) 암행어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건창은 1866년 15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나이가 어린 관계로 19세가 돼서야 벼슬을 할 수 있었다. 187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발탁돼 청나라에 가서 외교활동을 했고, 두 번에 걸쳐 암행어사를 맡기도 했다. 190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역적을 성토하는 상소[討逆疏]를 올렸다. "匹婦匹夫의 죽음에 있어서도 자신이 天命으로 죽지 못하면 원수를 갚지 못한 원한이 있는 것인데, 어찌 國母가 시해되었는데도 그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匹婦匹夫之死 而不得其命者 猶無不償之寃 豈有國母被弑 而讐終不復者乎)"라는 내용이었다.

 작자는 자신이 방문한 공간을 '좋은 누대(好樓臺)'라 한다. 첫째는 '흰 성가퀴'와 '붉은 용마루'의 누대에서 '변방의 천 리를 한번 쳐다'볼 수 있으니 문루의 기능을 수행하기 좋다는 것이다. 표현에 나타난 대로 '푸른 절벽이 어지러이 둘러싸고 있'으니 적을 방어하는 데 수월해 보였다. 한편 암행어사의 소임을 받은 작자가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 생각하며 '중양절에 홀로 잔'을 들며 유흥상경[遊息]의 공간으로 삼기에도 좋다고 한다. 공북루는 군사 및 유흥상경[遊息]의 기능이 동시에 가능했던 누정이었던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