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인천시 보건복지국장
한자에는 어여쁜 글자가 참 많다. 곱씹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 글자들 중 하나가 '넉넉할 유(裕)'다. 뜻을 나타내는'옷 의(?)'에 소리와 넉넉함을 아울러 나타내는'골짜기 곡(谷)'으로 이뤄져 있다고 통상 풀이된다. 그런데 내가 이 글자를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은, 돈오(頓悟)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우리 한복의 겹겹으로 넉넉한 소매주름이다. 소매주름은 크고 작은 골짜기를 닮았다.

나는 한 때 개량한복 마니아이기도 했지만 사실 한복(韓服)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어릴 적에 가야금 연주를 그저 불편하고 지루하게 여겼던 것처럼 한복도 그러했다. 그런데 한두 해 나이 들면서 판소리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 듯 한복이 지닌 미덕에 탄복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입는 옷은 자꾸만 몸에 꽉 끼도록 만들어낸다. 미국 서부의 황야를 떠올리게 하는 청바지가 대표적이다. 이동과 개척을 위해서는 활동성이 좋고 실용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양복도 그렇다. 몇 년 전에 맞춘 펑퍼짐한 양복보다는 요즘 것이 확실히 세련돼 보이기는 하다. 이런 서구화의 유산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일본의 기모노(着物) 치마품은 매우 좁고 중국 치파오(旗袍)도 몸을 꽉 조이는 형태다. 몸에 꽉 끼는 옷은 피부 속에 산소 공급을 방해하고 신진대사를 원활하지 못하게 한다. 몸을 조이지 않고 몸과 옷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춥지도 덥지도 않게 하는 우리 한복과 대조된다.

우리 한복의 제일 특징은 넉넉함이다. 우리 고유의 겉옷인 도포나 두루마기 소매는 얼마나 넓은가. 바지저고리와 열두 폭 치마의 품은 또 얼마나 넉넉한가. 고쟁이는 물론이고 속속곳까지도 통이 크기는 매 한가지다. 한복의 공간은 여백의 멋이다. 꽉 끼는 긴장감이 아니라 완만함이다.

한복의 넉넉함을 상징하는 것은 주름이다. 주름은 골짜기를 이룬다. 겉으로 드러내고 돋보이고자 하는 서양 옷과 대비된다. 거들과 스타킹, 티셔츠는 물론이고 요즘 대세인 레깅스와 스키니 진은 말 그대로 몸에 딱 맞게 찰싹 달라붙어 체형을 그대로 노출한다. 한복은 드러내기는커녕 감춘다. 소매주름이 만들어내는 골짜기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감싸 안는 포용(包容)이다. 이게 한복의 두 번째 미덕이다. 스스로를 안으로 접고 접어 만든 골짜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숨 쉬는 공간이 된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듯이 넉넉한 소매주름은 정신의 고양(高揚)을 머금고 있다.

한복의 세 번째 미덕은 느림이다. 아침마다 부랴부랴 양복바지와 저고리를 걸치는 둥 마는 둥 출근길 재촉하는 오늘 우리 일상에서 한복과의 동거는 애당초 무리다. 호들갑스럽고 덜렁대는 사람은 한복을 제대로 입기 어렵다. 가령 바지를 겹으로 싸서 허리띠 묶고 대님 매고 고름 추스르는 작업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무한도전과 경쟁의 대오에 떠밀려 강박과 피곤에 물든 영혼은 돌아보기조차 힘든 우리 현실에서 한복의 느림은 호사(豪奢)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 멈춰서 자기 영혼이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깃과 술이 많아 치장하는데 거추장스럽지만 품이 넉넉한 인디언 복장에서 한복의 넉넉함과 느림의 정신을 떠올린다면 우연의 일치 혹은 나만의 견강부회일까.

넉넉할 유(裕)는 여유(餘裕), 부유(富裕) 혹은 유복(裕福)과 같이 그 쓰임말도 참 좋다. 일본어에는 여유를 뜻하는 유토리(ゆとり)란 말이 있고 영어로는 가외(加外, redundancy)라는 말이 있다. 남는 공간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담고 잠시 멈추어 자신의 영혼을 사색해 보도록 이끄는 글자 유(裕)가 참 어여쁘지 아니한가.
2015년은 양띠 해다. 양은 동작이 느리고 둔감하나 날뛰지 않고 유유하며, 군거(群居)하면서도 서로 우위다툼이나 독점욕 없이 순박하다고 한다. 그 순수한 본성 때문에 때론 희생양(犧牲羊)이 되기도 하지만. 넉넉함으로 품고 사색하는 느림을 지닌 소매주름을 새해 아침에는 새삼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