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사진가
문자 메시지로는 제법 긴 내용이 왔다. 보낸 사람은 K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였다. 전시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관람을 하러 왔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총명한 아이다. 그 아이는 어느 날 느닷없이 다섯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을 찾아온 용감한 아이기도 하다. 그래서 긴 메시지를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고 모두 읽게 된 원인이다. '이 메시지를 4일 내에 20명에게 보낸다면 4일 후에 놀라운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됩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솔깃하게 했다.

가뜩이나 심난한 터라 은근히 좋은 소식을 기대하면서 그 아이가 하라는 대로 20명에게 즉시 보냈다. 그런 후 아내에게 4일 후면 놀라운 소식이 올 거라는 말을 은근히 내비쳤다. 아내도 그 말에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내 입에서 생전 처음으로 나온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4일 후 아침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되도록이면 아침에는 논쟁거리가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 하는 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언성을 높일 만큼 격한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한마디의 말이 비수보다 더 무서운 흉기가 된 것이다.

작업실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닫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못난 놈이었다. 아이가 보내온 메시지를 철석같이 믿고 은근히 기대를 한 것이 화를 불러왔으며 그래서 죄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이 세상에 요행이란 없다'는 신조로 살아오셨다.
노력의 결과물 외에는 어느 것 하나 기대를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생각나 죄송스러운 마음에 두 눈이 경련이 일어나는 듯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특히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부터 더욱 신속하고 간단한 전자문화로 바뀌고 있다. 작고 납작한 스마트폰 하나에는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뉴스와 영화, 드라마는 물론 한류스타의 활동과 영상 까지 쉽게 볼 수 있는 신기한 세상이다. 이제는 부고나 청첩장마저도 스마트폰으로 보내온다.

종이 편지쓰기는 점점 멀리하게 되고 전자편지 마저도 귀찮게 느껴지는 세상이 됐다. 전동차 안에서 신문이나 책 읽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아이건 어른이건 모든 사람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전동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거나 들여다보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책이나 신문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전해오는 불필요한 메시지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 늘어난 셈이다. 특히 여기저기서 까톡, 까톡 소리가 들려올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이번에 문자를 보내온 아이에게 사실대로 답장을 보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보내온 글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아이에게 올바른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내가 겪은 부끄러움보다 더 값진 교육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네가 보내준 글을 즉시 이행했으며 4일 후에 놀라운 소식이 올 거라는 한 구절이 은근히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는데 아침에 싸움판이 벌어진 것이 전부로구나. P군아 좋은 소식은 오직 주어진 일에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단다. 네가 보낸 내용만으로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는 건,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니.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어서 고맙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나 그런 문자는 보내지 말아주렴" 막상 글을 써서 발송 터치를 하고 나니 은근히 기대를 했던 내가 아이보다 더 못난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올해 마지막 액땜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고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