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인천예총회장
금월 3일 여명과 함께 온 세상을 흰 물감을 뿌린 듯 첫 눈이 내렸다. 평생 수채화를 즐기며 그리며 봉사해 온 박정희 할머니가 93세의 나이로 같은 날 영면 하셨다. 몇몇 지인들과 고인에 대한 해적이를 나누며 '아, 죽음이 화두가 되는 세상 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유난히 금년은 슬프고 가슴아린, 쳐들고 싶지 않은 잿빛의 단어 '죽음이 화자되는 것은 왜 일까. 그림을 그리며 나도 모르게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되어'를 따라 부를 때면 추상명사인 '죽음'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다가온다. 불가에서 생로병사를 인간이 겪는 고통으로 꼽지만 이제는 여러 과정이 생략된 채 죽음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생사(生死), 시종(始終), 인귀(人鬼), 유명(幽明)과 같은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가 보다. <논어>에 죽음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삶을 모르면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곧 죽음을 회피 하려는게 아니라 죽음을 제대로 알려면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성리학자 정이천의 '생과 사는 하나이며 둘이다.'라고 한 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죽음에 대한 언명은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 반어적인 표현으로 <논어>에는 죽을 사(死)가 38회 날 생(生)자가 16회 나온다. 형용모순처럼 보일진 몰라도 <장자>의 '대종사'가 말하듯 생사를 나누지 않아야 삶과 죽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는 뜻,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이다. 평생 의료봉사에 매달린 부군을 뒷바라지하며 자녀의 어머니로서의 또 어머니 김경내(친정 어머니)의 멘토로 삼아 인천여성인물에 선정되는 여인의 길을 걸었으며 훈맹정음 창시자 박두성 선생의 딸로 고진감래한 세월의 아픔이 누구보다 크셨던 총명강기한 어머니, 할머니로서 살아오셨다. '천상소녀'로 고인은 그림을 좋아하시며 그리길 30여년 한국수채화공모전 7회입선, 1회특선으로 수채화가로 데뷔, 평안수채화교실을 열고 배우고자 하는 모두를 품으시며 재능을 나누시는 모습이 아름다운 분 이제는 뵐수가 없다. 필자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중 동구기행차 방문을 드렸던 11월의 어느날 기침도 어려운 상황인데도 침상에 기대어 제철 과일과 채소를 보시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 이제 기억의 창고에서나 회상할 일로 남았으니 저 강을 건너 가셨어도 그림을 계속 그리는 모습으로 남으리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육아일기>라는 그림일기를 출간하며 배다리 아벨에서 전시회를 열어 큰 교훈을 주셨던 그 모습도 함께 말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인생사 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에 예술의 종자 역할을 하며 또는 여러 분야에서 터밭을 일군 분들의 삶의 여적을 그릇에 담아내는 '구술채록'을 못하고 있다함이 아쉽다. 훈맹정음의 창시자 박두성 선생의 딸로서,부녀의 교육에 대한 헌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장학사업 등 고인의 생은 우리들을 위한 삶 이건만. 사라져 가는 것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 담아 간직 하고자 함이다. 정말 아쉽기 그지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시도해 볼 일이다. 눈은 이 겨울 삶이 삶으로서 회향하며 또 내릴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