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서 송도중학교 교장
수능 이후 고3교실에서 교육은 사라졌다. 아니 학생들이 없다. 어디 갔는지 찾기도 어렵다. 늦게 오는 학생, 예·체능 계열 진학 준비를 위해 무단 조퇴하는 학생, 논술고사나 심층 구술 면접 보러 가는 학생은 물론,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한 학생도 그저 시간만 때우다 간다. 교육과정은 있어도 배울 것 없는 학생과 가르칠 것 없는 교사가 특별한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런 현상은 매년 수능이 끝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욕구를 억제해 가며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온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런 학생들에게 다시 교과서를 펴라는 것은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수능 이후 3개월이란 황금같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렇게 학교에서 방치된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해방감에 젖어 탈선행위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는 수능 이후 학생들의 일탈 행위 및 청소년 비행 증가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수능 이후 정상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교육 당국은 정해진 수업 일수를 모두 채워야 한다며 수능 이후 고교 3학년의 무리한 단축수업이나 편법적인 출결처리 등 교육과정 파행 운영과 관련해 지도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지침을 매년 반복적으로 일선 학교에 내려 보내고 있다.

시·도 교육청도 역시 일선 고교에 보낸 '수능 이후 생활지도, 교육과정 운영 지침'을 통해 오전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마련토록 지시하고 있다. 마땅한 수능 후 프로그램도 없이 출석만 강조하는 교육부의 발상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상황이 이러자 학교자체에서 편법을 동원하여 시간표만 그럴듯하게 짜놓고 실제로는 비디오 시청이나 자습 등으로 대충 때우다 집으로 돌려보내는 곳도 허다하다. 이러한 시간 낭비식의 학교교육현실을 이해하는 교육 당국도 이를 눈감아 준다. 수능에 맞춰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왔던 학교가 수능이 끝난 후 일종의 공황상태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학생들을 방치한 것은 누구인가? 바로 학교와 교육 당국이다. 우리는 이들을 학교로 다시 불러들여 수능 후 학교교육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 학교교육의 정상화라 함은 교과서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인생을 설계하고 진학이나 직업 등의 진로를 잘 결정하도록 도우며,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도록 그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동안 입시준비로 인해 소홀히 했던 인성지도, 건강지도 등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지도에도 주력해야 한다.
교육부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수능 이후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11월에 치러지는 현행 수능 일자 및 수능 성적 통지 일자를 점진적으로 늦추고, 그 이후 기간을 진학 상담, 진로 지도 등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학생들의 소양과 가치관을 키워줄 수 있도록 고3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발굴 확산 시켜야 한다. 아울러 학교장, 교사의 재량권을 늘려주고 학교와 교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기 보단 외부 전문 강사나 다양한 수업프로그램 등을 적극 도입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현행 입시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선 미봉책에 불과하다. 교육정상화의 한 축인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