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필 시인·수필가
70년대 들어 우리말에 외국어 한마디씩 섞여 사용하는 게 유식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사회는 영어사용이 압도적 우세를 보인다. 신문기사의 내용, 회사제품명, 상호이름 등에 영어를 그대로 쓰거나, 발음을 우리문자로 표기하고 있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지로 인해 일본어까지 혼용되고 있다. 동아출판사에서 1990년 에 발간된 '새국어사전' 속에서도 외래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 등)를 많이 담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말 사용에도 거의 등장 않고 있는 단어들이 수두룩하다. 몇 달 전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는 447개 공공기관과 산하기관 홈페이지 화면을 대상으로 한글사용 실태를 조사한 뒤에, "국적 불명의 신조어나 혼합어로, 우리한글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나가 쉽게 공공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바른 한글 쓰기에 앞장서야 하는 공공기관마저 외래어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난 셈이다. 또한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62학번'일동 명의로"우리말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란 제하로 모 일간지에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정작 문제를 삼아야할 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 출신 국어교사와 국어학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특히 해당 주무관청인 교육부에서는 남의 일처럼 뒷짐만 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사실상 외국어와 외래어 사용이 편리해서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갖게 한다. 오히려 외래어 추방을 외치는 사람들이 시대에 뒷걸음친다는 분위기다. 한편 일부 국어 학자들은 국제적으로 한국이 문맹률이 가장 낮은 점은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한다. 실로 과학적 원리, 실용성, 합리성에는 타국어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세계적 자랑거리다고 침을 튀긴다. 하지만 현재 우리말과 글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하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보면 정말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런 우리의 언어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문명의 발달도 일부 원인이 되고 있다. 카카오톡, sns, 인터넷, 스마트폰등 사용자들이 축약된 신조어를 만들고 또 청소년들의 틀린 맞춤법, 소리 나는 대로쓰기, 비속어, 은어 등을 마구 전파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청산서'를 빌지라고 한다. bill<청구하다>+지<紙>를 혼합시킨 것이다. 또 하나 들쳐보면 멘붕은 mental<정신의>+붕괴에서 앞 자만 따서 만든 신조어다. 즉 정신이 무너진 상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해괴한 신조어 사용은 가족과도 소통을 막고 이웃과 대화의 벽을 쌓는다.

그들이 편의상 쓰는 것인지, 모르고 쓰는 것인지, 알길 없지만 다른 청소년의 올바른 언어습관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성세대도 한글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커피집 상호는 '스타버그, 커피빈, 파인트리'등 영어발음으로 간판을 붙이고 있다. 메뉴판을 눈여겨보면 커피종류는 온통 영어발음으로 게재해 놓아 얼떨떨해진다. 빵집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바게뜨, 쉐라메르 ,뚜레쥬르'등이 있고, 미장원간판 역시 '헤어시티, 엔티티헤어, 헤어크리닉'다양하다. 과거 백화점간판은 어떤가. 'Homeplus,Eemart, Lotte, Outlet'등 온통 영어문자다. 어디 그뿐인가. 주택가 골목을 차지한 구멍가게도 '세일쇼핑, G슈퍼, G25, CU, 7일레븐'등 영어문자 또는 발음으로 쓴 명찰을 달고 있다. 이처럼 우리언어 파괴 현상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말 속에도 영어가 이미 상용화 됐다. 승용차에만 타더라도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백미러, 스페어타이어, 범퍼, 와이어'등등 적지 않다. 또 일제의 통치 잔재로 일본말이 우리말과 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흖다. 기스(흠, 상처)사라(접시)소라색(하늘색)야끼만두(군만두)오뎅(생선어묵)모찌(찹쌀떡)등이 부지불식간에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말하기를 외래어를 제대로 받아들여 쓰는 것은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 일본에서 온 말이니 무조건 쓰지 말자 하는 것은 소아병적 발상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것들을 선별하여 우리 것으로 받아 들어야지, 우리말이 더 좋은데 구태여 외래어를 만들어 언어생활에 혼란을 주면 안 된다. 특히 언론기관이 외국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상 잘못된 일이다. 또한 다문화 가족들도 한국말을 배우는데 외래어가 섞어 애를 먹는다고 넋두리를 한다. 만일 세종대왕께서 이런 사회현상을 본다면, 가슴 치며 통탄할 것이다. 외국어 남용으로 인하여 우리말과 글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우리언어가 무덤 속으로 들어갈 날도 멀지않다. 더 늦기 전에 정부당국은 후손들이 고유의 한글문화를 잘 지켜나가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