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인천에서 시작한 최초의 역사 -14- 사이다
1950년대에는 소풍 가는 날이래야 겨우 맛을 봤던 사이다이다. 탄산(炭酸)의 짜르르한 미각적 상쾌함과 함께 눈깔사탕 말고는 별다른 단맛을 즐길 수 없던 유년시절의 갖가지 추억까지 더불어 떠오르게 한다. 그 사이다가 인천서는 앞바다 여기저기에 떠다닐 만큼 흔했다.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서영춘 씨의 '사이다 랩'에 나오는 밉지 않은 과장된 사설인데, 그런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국내 최초의 사이다 공장이 인천에 세워졌던 개화기의 배경 때문이다. '인천탄산수제조소'가 지금의 중구 신흥동 해광사 근처에서 창업한 것은 1905년이었다.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미국식 제조기와 5마력짜리 발동기를 사용해 사이다를 생산했다. 1916년 9월 발행된 미국의 월간지 '월드 아웃룩'에는 경인선 철도의 풍물이 소개돼 있는데, 객차 전면을 덮은 '성인(星印=별표)샴페인사이다'와 '인천탄산수제조소' 광고가 인상적이다.
사이다의 원조인 '샴페인 사이다'는 사과즙에 블랜디와 설탕을 넣고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이 대략 1~6% 들어 있는 무색 음료였다. 그것이 어느 시기에 오늘날과 같이 구연산과 감미료, 탄산가스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 '사이다'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광복 후에는 '인천탄산수제조소'의 후신인 '경인합동음료(주)'가 '스타 사이다'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무렵 전국 12개 업체 중 인천의 '스타 사이다'와 평양의 '금강 사이다'가 단연 독보적 존재였으나 1950년 서울의 '칠성 사이다'가 출시되는 바람에 판도가 바뀌었다.
'스타 사이다'는 비록 일인들에 의해 시작됐지만, 훗날 전국을 석권했던 인천의 '명물'이었다. '성인(星印)'으로 시작해 '스타(星)'를 거쳐 '칠성(七星)'에 이른 인천발 '별표 돌림자 사이다'가 이제는 '세계의 빛나는 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조우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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