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10> 인천팔경의 여러 양상이 인천사람들에게 남긴 것은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인천팔경이 하나 더 있다. 후지노 기미야마(藤野君山, 1863~1943)가 지정한 인천팔경을 제시했는데, 그는 시가(詩歌)와 문장, 그리고 하이쿠에 능통했다고 한다.

漢江夕照傾한강의 석양
天主晩鐘鳴천주 성당의 저녁 종소리
松林秋月迎송림의 가을 달 보기
鹽河落雁落염하강의 낮게 나는 기러기
永宗晴嵐明영종도의 맑은 아지랑이
月尾歸帆平월미도로 돌아오는 배
桂陽暮雪淸계양산의 저녁 눈
鷹峰夜雨聲응봉산의 저녁 빗소리

위의 인천팔경은 4자(字)가 아니라 5자 조어(造語)이다. 하지만 각 팔경의 마지막 글자는 운자(韻字)를 맞추려는 의도일 뿐 생략해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
예컨대 '漢江夕照傾'에서 '傾(기울다 경)'은 저물녘의 햇빛(夕照)에 포함돼 있고 '天主晩鐘鳴'에서 '鳴(울다 명)'도 '晩鐘'에 전제돼 있듯이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인천팔경인데도 '한강의 석양'을 선정한 것은 '漢江の水'(<신찬 인천사정>, 1898년)의 경우와 유사하다. 물론 그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다음은 전적을 확인할 수 없는 인천팔경이다.

虎口落照호구포의 낙조
八尾歸帆팔미도로 돌아오는 배
玉龜漁笛옥구섬 어부들의 피리소리
獐島丹楓장도의 단풍
鷄冠岩花닭벼슬 모양의 바위
文鶴晴嵐문학산의 맑은 아지랑이
靑龍浮雲청룡 모양의 구름
五峯明月오봉산의 밝은 달

호구포는 논현동의 서남쪽에 위치했는데 지형이 범의 아가리(虎口)처럼 생겼다고 하여 명명된 곳이다. ○○낙조와 ○○귀범은 모두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안식을 취하기 전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옥구는 남동구의 고잔동의 해안가에 있었던 섬이다.
장도는 남동구의 소래 포구 근처에 위치했는데 구릉지의 모습이 노루를 닮았다고 하여 '노루목' 혹은 '노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어적과 ○○단풍은 청각과 시각의 대비로 읽어낼 수 있다.
계관은 닭벼슬이란 뜻으로 남동구 고잔동 면허시험장 앞에 있었던 닭겸산이다.
'청룡부운'에서 청룡이 공간을 지칭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것은 알 수 없기에 '용 모양의 구름' 정도로 제시해 보았다.
오봉은 남동구 도림동-논현동-고잔동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오봉산이다.

팔경 중에서 팔미도, 문학산을 제외하고 다섯 개가 남동구에 위치하고 있다. 팔미도와 문학산은 남동구 해안가에서 포착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위의 팔경은 남동구를 중심으로 선정했기에 남동구팔경이라 해야 할 듯하다. 현재 미추홀공원(송도 신도시)에 '인천팔경' 안내판과 지도가 있는데, 위의 팔경이 소개돼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제까지 인천팔경을 검토해 보았다.

시대를 초월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은 소상팔경의 '○○歸帆'이었다. 강화십경의 燕尾漕帆, 영종팔경(오가팔영)의 八尾歸帆, 덕적팔경의 龍潭歸帆, 부평팔경의 蘭浦歸帆, 서곶팔경의 蘭浦歸帆(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용유팔경의 八尾歸帆)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전하던 漢江ノ歸帆(<인천향토자료조사사항>, 1915.), 漢江에 歸帆('조선일보', 1921.5.1.), 永宗의 歸帆('동아일보', 1923.12.1.), 月尾歸帆平(藤野君山, 1863~1943), 八尾歸帆(작자 ?, 연대 ?)도 '○○歸帆'의 경우들이었다.
해당 지역이 바닷가와 인접해 있건 떨어져 있건 상관없이 '歸帆'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상팔경의 '山市晴嵐'처럼 해당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산(山)도 시대나 지역과 상관없이 선정 대상이었다.
결국 인천팔경이 시대나 지역이 다르더라도 소상팔경의 '○○歸帆'과 '○○晴嵐'이 계속 등장한 것으로 보건대 인천지역이 다른 지역과 변별되는 점은 '歸帆'과 '산(山)'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지역이 바닷가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해당 지역의 높은 공간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歸帆'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등장했던 것이다.

이것이 인천팔경의 여러 양상을 통해 얻은 결과이기에 인천지역의 변별점을 확장시키는 구심점을 '○○歸帆'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배(歸帆)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동시에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고 그것이 바로 여타 지역과 변별되는 인천의 특징이었다.
이른바 절경(絶景) 및 승경(勝景)의 다른 표현이 '팔경(八景)'이라 할 때, 인천팔경의 주요 상수(常數)를 유지하는 일은 친수공간(親水空間)의 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