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에서 ▧
수백만 볼트의 햇살이 드리워진 코발트 블루의 지중해. 레드카펫 위를 도도히 걸어가는 세계적 톱스타들. 영화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칸영화제' 취재를 간 때는 지난 2003년(56회), 2004년(57회)이었다.
'엘리펀트'란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56회 영화제에서, 취재는 사실 뒷전이었다. 비현실적인 칸의 풍광에 취하고 스크린에서만 보던 배우들에 반해 정신줄을 놓은 채 2주를 보냈다.
57회 영화제는 달랐다. 한 차례 경험도 있거니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일용할 양식'(기사소스)이 넘쳐났던 것이다. 검푸른 지중해 밤하늘 아래서 박 감독 가족과 해물 요리를 먹던 일, 인천 출신 배우 강혜정과 인천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매니저 포즈를 취하면서 배우 최민식과 사진을 찍던 순간…. 칸영화제 취재와 관련한 기억의 프레임들은 온통 몽환적인 잔상들로 가득하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인천'이란 이름이 안겨준 자부심이었다.
56회 칸영화제가 열리기 3개월 전, 조직위가 요구하는 서류를 갖춰 취재신청을 했다. 얼마 뒤 이메일로 프레스등록 사실을 통보받았고 14시간의 비행 끝에 개막 하루 전날 현장에 닿았다. 약간의 흥분과 긴장감으로 조직위 사무실을 찾았을 때,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섹시한 여성이 몇몇 질문을 던졌다.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눈치코치로 대답하던 기자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인천'이었다. 인천, 인천일보 등등. 조직위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인천일보라면 인천을 대표하는 신문이 아닌가?"라고 물었고 기자는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오케이~" 만족스런 미소를 짓던 여자가 핑크빛 프레스카드 하나를 내주었다.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나라 영화계 관계자들과 기자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직위는 매체 영향력이나 취재방문 횟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색깔이 다른 프레스카드를 발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행길인 기자에게 A급 프레스카드를 발급해주자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을 보낸 것이다. 영화제 기간 내내, 그 프레스카드를 금메달처럼 목에 걸고 다니며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제치고 좋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감상했다.

'인천'이란 이름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도시 칸에서도 통하고 있었고, 인천이란 브랜드는 기자에게 큰 특권을 선물했던 거다.

10년 전, 인천이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결정된 상태였다면 기자는 더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도시브랜드 가치는 급격히 상승한다. 세계의 각 도시가 엄청난 예산을 감수하면서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는 이유다.

인천아시안게임 개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기자는 잘 알고 있다. 인천에 살고 있다는, 인천일보라는 신문사에 몸 담고 있다는, '인천'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인정을 받은 기억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광저우AG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한 예산으로 치러야 하는 인천AG의 성공여부는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다.

잔치를 열면서 주인이 정성을 쏟지 않는데 손님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인천AG의 꽃은 인천시민들의 속에서 먼저 피어나야 한다.

황해의 짭쪼롬한 바닷내음을 함께 맡으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대지를 딛고 살아가는 인천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김진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