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투고 ▧
우리 선조들은 좁은 농경지에 여러 종류의 작물을 재배해 대부분의 식재료를 자급자족해왔다. 그러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농업의 형태는 특정 농작물을 재배하고 공급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그 이익으로 다른 농작물을 구입하는 형태의 기업농으로 바뀌면서 단일품목 집중화를 이뤘다.
이처럼 단일 품종으로 넓은 면적에서 재배하는 것이 편리성과 경제적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식단의 동질화로 이제껏 특정 지역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던 고구마, 얌, 사탕수수, 마카 등의 소비는 줄어든다.
콜롬비아 국제 아열대농업연구센터 연구진에 따르면 지난 50년 전보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몇 안 되는 농작물과 육류, 유제품 등에서 대부분의 칼로리와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진은 지난 1961년부터 2009년까지 152개국의 식재료에 관한 유엔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전체적으로 음식의 양이 늘었고, 밀은 전체 국가의 97.4%에서, 쌀은 90.8%, 콩은 74.3%가 주요한 식재료로 소비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육류가 점차 단백질 섭취에서 더 중요한 공급원으로 됐고, 콩·옥수수·팜·해바라기 등 기름을 생산하는 농작물이 주요 표준 식량자원 자리에 오르게 됐다고 했다. 밀과 쌀, 감자 등의 작물로 집중되는 식단은 위험하다고도 했다. 병해충 공격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 또한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세계인의 식탁에서 외면을 받고 있는 호밀, 얌, 카사바 같은 농작물의 보존과 재배가 시급하고 식량 안전을 위한 식단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날 바나나 전염병인 일명 '파나마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어 더 이상 바나나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바나나 생산량의 7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유래한 재배품종이다. 예전에는 바나나 종이 다양했지만 시장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크게 빨리 자라도록 캐번디시 품종을 만들었다. 사실 캐번디시 품종의 탄생 이전에도 '그로미셸'종이 있었지만 이 품종이 파나마병으로 위험에 처하면서 그에 대체할 바나나로 캐번디시 품종이 탄생한 것이다. 최근 한 외신 보도에서 바나나 전염병 파나마병의 일종인 TR4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고 이 전염병으로 인해 바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했다.

다양한 품종과 작물의 재배가 불안정한 기후변화 상황에서 병해충 공격으로부터 안정적 먹을거리를 우리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경제논리와 편리함의 추구가 오히려 우리의 먹을거리 걱정과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옴을 자각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급변하는 기후변화 속에서 우리의 안정적 먹을거리 확보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발휘해온 지혜를 거울로 삼아 작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재배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박상렬 농촌진흥청 분자육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