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감 후보 인물탐구 - 이청연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후보는 충청도 예산 출신으로 어린시절 오지랖 넓은 골목대장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선생님을 보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없는 살림에도 중학교 진학을 위해 홍성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양능력이 부족했던 부친을 대신해 큰 형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공부를 했던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교직이라는 생각을 굳히며 재수 끝에 교대에 진학했다.


▲ 교사시절 이청연 후보는 아이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자주 소통하곤 했다.
▲의욕과 다른 교직생활

1954년 충청도 예산에서 4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큰 형의 지원 속에 광시초와 홍성중, 홍성고등학교를 졸업, 인천교육대학교(현 경인교육대학교)를 마치고 교직에 뛰어들었다.

교사 적체 현상으로 교대를 졸업하고 나서도 1년 반이 지난 1976년 6월에야 첫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발령 4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부친이 살아생전 교단에 서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경기도 연천 농촌마을에 위치한 노곡국민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그는 의욕과 달리 학교 현장의 군대식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인가 보다는 생각이 컸다고 회상했다.

대신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아이들과 교직에 있던 기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했던 학급문집 만들기, 어린이날 편지쓰기 같은 것은 교직생활 초기에 시작한 일들이다.


▲ 이청연 후보는 1999년 전교조에 참여했다는 명분으로 해직, 4년여의 투쟁끝에 학교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전교조, 인생을 바꾸다

교육현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목격할 기회는 정말 뜻하지 않게, 사소한 계기를 통해 찾아왔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함께 교직생활을 하던 후배 교사의 "뜻 있는 교사들이 모여 교육현실을 논하는 자리가 있다"는 권유로 주안5동 성당을 찾았다.

하지만 학교 교장 등의 방해로 공청회는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이 그의 인생방향을 바꾸게했다.

그는 그날 이후 학교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의 손에 이끌리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1989년 교육현장의 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전교조가 설립되자 그는 주저없이 그 일원이 됐다.

1999년 해고돼 4년을 거리의 교사로 살았지만, 전교조가 학교를 바꾸는 밀알 같은 존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2001년에는 전교조 인천지부장직을 맡았고, 교육위원에 출마하기 위해 교단을 떠나기 전까지 전교조는 항상 그의 활동의 뿌리이자 터닝포인트였다.


▲자원봉사센터, 경험의 폭을 확대하다

전교조를 만난 것이 그의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라면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인천광역시 자원봉사센터 소장으로서의 활동 경험이다.

지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0.3%p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직후의 일이다.

교사, 전교조 활동이 교육현장을 구석구석 알게 했고, 교육위원 활동이 그 현장의 밑에서 벌어지는 구조의 문제를 파고들게 했다면, 자원봉사센터 활동은 지금까지의 경험의 폭을 확대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자원봉사는 원래는 시청, 교육청, 구청이 감당해야 하는 공공의 책임 영역에서 나타나는 공백을 민간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매우는 것이다.

그만큼 공공기관들이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언가 하려고 하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 잠재된 힘들과 만날 수 있는 경험이자 교육자로서 만나기 쉽지 않은 소중한 기회였다.

어렵고 소외된 시민들에게 어떤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지, 교육정책과 행정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지역사회와 학교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 준 값진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