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투고 ▧
시인 박목월님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고 4월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노래했다. 필자가 있는 연구소에도 커다란 흰목련과 자목련 나무가 서 있어서 해마다 순백의 꽃봉오리를 틔운다. 이를 보면서 늘 4월의 시와 노래를 마음속에 띄우고 잠시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목련이 조금씩 일찍 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너무 일찍 피었다가 지고 말았다. 그뿐인가?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모두 한자리에 피었다가 일찍 사라져버렸다. 초여름에 피는 꽃이라고 생각했던 라일락이며 아카시아꽃들이 벌써 만개해 진한 향기로 우리를 취하게 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봄은 이토록 짧아진 것이다. 갑작스런 지구의 기후변화가 내 곁에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다.

기후변화의 여파는 아마 농업과 농어촌에서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 올해만 해도 꽃 피는 순서가 달라져서 꿀을 따는 양봉농가가 혼란을 겪고 있다. 추웠다 더웠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과수원의 사과, 배, 복숭아의 개화시기가 달라져 과일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채소들도 생육이 달라져서 심는 시기와 품종, 출하시기, 이에 따른 농산물 가격변화에 대한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병충해 발생 시기가 달라져서 새로운 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다. 땅과 하늘에 의존하는 농업의 특성상 기후변화가 일으킬 위험요소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농업기술 개발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시점이다.

얼마 전 바나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큰 관심을 끌었다. 세계 바나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캐번디시라는 바나나 품종을 침해하는 곰팡이가 원인이었다. 현대 농업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개량된 품종을 위주로 재배를 한다. 따라서 급작스런 기후변화나 새로운 병 발생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현 재배종이 취약하다면 손을 쓸 기회조차 없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종자를 개발·확보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최근 생명공학 기술은 기초에서 응용분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농업에서도 의학과 마찬가지로 벼, 배추, 고추, 토마토 등 여러 가지 작물의 유전자를 들여다 보면서 가뭄과 염해에 강하고 병에 걸리지 않으면서 잘 자라서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구성요소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생명현상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창의적이고 새로운 농업기술 개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언젠가는 사막이나 바다에서 혹은 우주에서 농장을 일굴 수 있는 농업 신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기후변화에 대비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하는 데 농업생명공학기술이 강력한 도구로 될 것이다. 원하는 시기에 꽃을 마음대로 피울 수 있고 작물의 생장을 조절할 수 있는 농업생명공학기술을 통해 점점 짧아지는 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달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윤인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분자육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