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인물탐구 - 인생사
▲ 지난 2011년 2월 송영길 후보를 비롯한 인천시와 삼성 바이오로직스 관계자들이 송도에 공장을 설립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의 별명은 자칭타칭 '황소'다.

커다란 키에 산만한 덩치만큼이나 우직한 성품 때문이다.

송 후보는 지난 2003년 발간한 저서 '그래, 황소처럼 이 길을 가는거야'를 통해 "얄팍함과 영악함을 거부하고 돌팔매를 맞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나의 길을 가야한다. 황소처럼 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송 후보의 인생은 과거 사회주의와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던 '투사'와 구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현실 개혁을 위한 '인권변호사', 정치권에 입문한 '정치인'의 모습이 혼재돼 있다.

송 후보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된 이후 '경제수도 인천'을 표방하며 2기를 꿈꾸고 있다.


▲ 연표 아래쪽 사진은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연설중인 송영길 후보.
▲외교관 꿈꾸다 학생운동 뛰어들다

송 후보는 1963년 3월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에서 면서기였던 송병수와 어머니 김광순 사이에 4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송 후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근 대도시인 광주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 시기 송 후보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하천변 단칸방에서 둘째 형과 할머니를 모시고 자취 생활을 시작한다.

송 후보는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거쳐 성장했다.

당시 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송 후보는 항쟁 과정에서 친구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 송영길 후보가 가족들과 1974년 여름 찍은 가족사진.
그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송 후보는 광주 민주화 항쟁 이듬해인 1981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류는 북한과의 통일 후 한반도의 혁명을 강조하던 '주체사상'이었다.

송 후보는 주체사상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며 치열한 학생운동을 펼친다.

송 후보는 이 시기에 신촌로터리에서 시위 중 지금의 아내인 남영신씨를 만난다.

송 후보가 경찰에 밀려 도로에 넘어져 있던 남씨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 졌다.

송 후보는 1984년 연세대 학도호국단을 해체한 후 총학생회장을 학생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로 제도를 고쳤다.

이후 초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된 뒤 학생운동을 민정당사 점거농성으로 구속됐고, 학교에서 제적된다.


▲ 택시노조 시절. 뒷줄 왼쪽 네번째가 송영길 후보. 송 후보는 지난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당시 송 후보는 노회찬 전 의원의 권유에 따라 택시노조 운동을 시작했다.
▲인천에 터를 잡다

송 후보는 1985년 4월 출소 후 부평역 뒤 철길 옆에 자취방을 얻었다.

학생운동가는 학교에서 나와 노동운동가로 변신하는 것이 왕도였던 시기였다.

변혁의 주인공인 노동자를 조직하자는 이유에서다.

그의 첫 직장은 주안역 앞 보성관광호텔 건축현장의 막노동일이다.

송 후보는 첫 월급날 직장 동료와 함께 맥주를 마셨던 기쁨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한다.

이후 송 후보는 노동자로 살아가며 노동운동의 길을 걷다 1991년 남씨와 결혼한 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사무국장 취임한다.

하지만 택시 노동자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상징이었던 구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자 현실 개혁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 송 후보는 동유럽의 실상을 돌아본 후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1994년 제3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 1991년 송영길 후보와 남영신씨의 결혼사진.
▲현실 정치인의 길

송 후보는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한 후 노동자의 법적 분쟁 500여건에 무료 상담이나 무료 변론 활동을 벌이다가 1996년 민주당에 입당한다.

송 후보는 1999년 계양구 재보궐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2000년 제16대 총선에 도전해 국회의원의 길을 걷게 된다.

송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법률' 법률안 제정에 참여한다.

송 후보는 이후 내리 3선에 걸쳐 국회의원직을 역임했다.

송 후보는 이 시기에 젊고 합리적인 '386정치인'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 2010년 7월 송영길 후보가 인천시장 취임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송 후보는 이후 4년간 인천시정을 이끌었다.
송 후보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전 인천시장과 대결했다.

당시 안 전 시장은 2선 시장을 역임하며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송 후보는 8.3%p차로 간신히 승리하게 된다.

송 후보는 이후 인천시 재정난을 겪으며 공무원 수당삭감, 세출예산 절감, 재산 매각 등을 골자로 하는 5·30 재정대책을 발표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는 등 시장 활동을 역임하다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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