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화도진설'철저한 문헌조사없이 동의 … 전국지도 현장답사·기획기사 보도

   
 1981년, 국내 권위있는 학자들은 최성연 선생과 함께 화도진을 현장답사한 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가 '화도진'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전국지들은 이 사실을 기획특집으로 보도한다. 사진은 당시 화도진이 체결장소라고 밝힌 신문기사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장소인 인천해관세무사관사 터가 새로 발굴된 세관 지도를 통해 확인(인천일보 9월16·17·23일자 1면)되면서 기존 주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지도 발굴 기사를 접한 전문가들은 인천의 향토사학자인 고 최성연 선생의 '화도진' 주장에 대해 철저한 문헌조사나 검증조차 하지 않고 많은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이 동의했다며, 학계의 무책임한 학문연구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에 대한 최초의 주장은 최성연 선생에 의해 제기됐다.

그는 1959년 간행한 <개항과 양관역정>에서 인천 내리교회 목사였던 존스 선교사가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에 1901년 1월 쓴 '새로운 세기'(The New Century)란 제목의 글을 인용하며 조약 체결장소는 '화도진'이라고 밝혔다.

최 선생의 주장은 이후 지속됐고 조미수호통상조약 100주년을 앞둔 1981년 12월 학계 전문가인 당시 국사편찬위원장,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단국대 사학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답사팀이 인천직할시 부시장과 최 선생을 대동하고 현장을 방문한 사실이 A전국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에 앞서 같은 해 10월 B전국지는 특집을 통해 '화수동 134번지 일대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소'라고 기획기사로 보도한다.

역사학계 권위자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화도진이 조약체결지'라고 확인해주자 인천시는 화도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지'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1988년 화도진을 복원해 지금까지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

그러나 최 선생의 주장은 존스 선교사가 <코리아 리뷰>에 쓴 영문글을 오역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 선생은 '미국인이 조약을 체결할 때 제물포는 만석동이라 불리는 해변가의 작은 마을과 화도의 세습적인 군영 뿐이었다'(When the American treaty was signed at Chemulpo the place could boast of a small village called Man-suk-dong and the hereditary military hamlet of Ha-do and that was all)에서 'Ha-do'(화도)를 조약체결장소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렇지만 권위 있는 학계 전문가들조차 최 선생이 근거로 제시한 <코리아 리뷰> 기사 원문조차 확인하지 않고, 현장답사를 통해 최 선생의 주장을 인정해 주었다.


조약체결장소가 화도진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박철호 전도사(50·인천 기념탑교회)다.

그는 지난 2007년,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최 선생의 영문 번역 오류를 지적하면서 '화도진은 조약체결장소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 왔다.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 장소연구-인천 화도진은 조미수교통상조약 체결지가 아니다'라는 논문을 통해 화도진이 왜 조약체결지가 아닌가를 증명하고 현 파라다이스호텔 부근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후 조미수호조약체결장소는 화도진과 파라다이스호텔 두 곳 모두에 기념표지석이 세워졌으며 조약체결장소가 과연 어디냐는 논란은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