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사료 수집연구가 김성수씨 주장
인천해관 문서 정리 중 옛 제물포지도 발견
필지번호 D39·건물명칭 '세무사공관' 표기
"건물 없던 언덕 위 급하게 천막 치고 조인"
   
▲ 새로 발굴된 제물포지도에 현재 인천시 중구 북성동 라파치아웨딩홀이 위치한 곳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인 인천해관세무사 관사터'稅務司公館'(세무사공관)과'D lot No 39'라는 필지번호가 선명하게 표기돼 있다. /자료제공=해관사료 수집연구가 김성수씨


우리나라 개항기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장소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화도진'이나 '현 파라다이스호텔' 이 아닌 인천화교 중산중학교 위 '라파치아웨딩홀' 자리라는 주장이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현직 관세청 서울세관 공무원이면서 해관사료 수집 연구가인 김성수씨는 "최근 발굴한 구한말 인천해관 문서를 정리하던 중 개항 당시 첨부된 제물포지도(Sketch of Chmulpo Enclosure in Jenchuan No 6 of 10 Jenuary 1889 to Seoul)를 발견했는데, 이 지도에 D39란 필지번호가 적혀 있는 위치의 건물 명칭이 정확히 표기돼 있었다"며 "그 장소는 지금의 남부교육지원청 뒤 자유공원 초입 라파치아웨딩홀이 위치한 자리"라고 밝혔다. <발굴 지도 참조>
 

   
▲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로 새롭게 확인된'D lot No 39'의'稅務司公館'(세무사공관)은 현재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으로 자유공원 입구 라파치아웨딩홀이 위치한 곳이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지금까지 조미통상수호조약 체결장소가 인천해관장 관사라는 이야기는 여러 경로로 알려졌으나 이곳이 어디를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표기한 지도가 없어 대개는 화도진이나 현 파라다이스호텔 부근으로만 추정했었다.

김씨가 이번에 발견한 제물포지도는 좌측 화상조계(청국조계)와 일본조계 경계면 상단 부근에 정사각형 모양의 부지에 'D lot No 39'라는 고유지번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한자로 '稅務司公館'(세무사공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문으로 'Commissioner's present residence'라고 병기하고 있으며 면적은 가로 53m, 세로 58m로 2865㎡(약 868평)에 이른다.

구한말 외교관으로 활동한 미국인 알렌(H. N. Allen)도 1901년 4월 발표한 한국연대표에서 '조미통상수호조약 체결장소는 인천해관세무사의 관사터'라고 적고 있으나, 기존 '인천제물포각국조계지도'는 건물명 등의 표시 없이 단순히 필지번호 D39로만 기록하고 있어 그동안 아무도 이곳이 세무사관사 터인지 알 수 없었다.

'조미통상수호조약'은 1882년 5월22일 조선이 서양 국가중 처음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으로, 어디서 조약을 체결했느냐를 놓고 논란을 빚어 왔으나 그동안 주로 화도진과 파라다이스 호텔부지 입구 쪽 경내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 그동안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라고 주장해 온 인천시 동구 화도진과 중구 파라다이스호텔에는 이를 기념해 각각 조약체결 재현 모형물이 비치되거나 기념 표지석이 서 있다. 사진은 파라다이스호텔 입구에 2006년 인천향우회와 인천시가 세운 기념 표지석.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김성수씨는 "라파치아 웨딩홀 자리는 1882년 건물이 없던 땅으로 조선은 우선 조약체결을 위해 급하게 천막을 쳐서 조인식을 가졌다"며 "당시 그 지역은 조선인들이 짓고 살던 허름한 초가집이 듬성듬성 있었고 무덤들도 산재했다. 높은 지역이었고 가리는 건물도 없었으므로 제물포 해안 아래에서 쳐다보면 D39 필지는 매우 잘 보이는 곳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인천해관 문서 발굴을 기회로 우리나라 근대사와 인천학 연구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발굴자료를 영인화하고 일반에 공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