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액재판을 맡으면서


 

   
▲ 인천지방법원 판사 장준아

필자는 지난 2년간 형사재판을 담당해 오다 올해부터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사소액재판을 맡게 됐다. 범죄의 유무를 가리고 형벌을 부과하는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은 사적인 권리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으로 그 중에서도 소액재판은 2천만원 이하의 금전 지급을 구하는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언쟁 중에 말문이 막히면 "법대로 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부분 당사자들은 이 말에 더 화가 치밀고 어쩔 수 없이 법원을 찾았다고 하소연한다. 소액재판이라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힘겹게만 느껴지는 재판은 재판인가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판장인 필자도 법대로 해달라는 당사자를 보면 참 얄밉다. 사람 사이의 대부분 분쟁은 법에 호소하기 이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바탕으로 도리와 관습에 따라 자체적으로 해결되고 그렇지 못한 사건만이 오랜 다툼으로 마음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법원을 찾는 것이다. 가끔은 판결을 선고하면서도 승소한 당사자가 진정한 승자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오죽했겠고 또 상대방이 판결대로 이행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마음고생은 어떨 것이며 힘겨운 집행 절차도 밟아야 하지 않는가.

민사재판에서는 형사재판에서와 달리 일방적으로 형을 선고하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자의 입장보다는 분쟁의 중간에서 이를 해결하는 중재자의 입장을 더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형사재판에서처럼 '법대로'만을 강조할 수 없는 이유다. 필자는 재판을 하면서 당사자들이 느꼈을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부드러운 법정 분위기 연출을 위해 가끔 얼굴에 작위적인 미소를 띠거나 억지 농담을 하려고도 시도하며 때로는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당사자에게 재판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해본다. 당사자들도 필자의 노력을 무시하지만은 않는 듯 가끔은 재판장의 설명을 귀담아 듣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노후한 연립주택의 아래층에서 시작한 인테리어 공사가 분쟁의 발단이 돼 위층의 보일러 파열로 인한 누수까지 겹친 한 사건이 있었다. 전임 재판장이 작성한 사건 메모지의 피고 이름 옆에는 '말 안 통함, 남탔만 함'이라고 적혀 있다. 처음 대면한 피고는 상대방인 원고나 재판장이 얘기할 틈을 주지 않고 본인의 억울함만 반복해 늘어놓는다. 필자가 원고의 입장에서 얘기를 하자 치면 피고는 금세 "판사님이 제 입장이라면 그렇게 애기하지 못할 겁니다."라고 반박한다. "저는 판사예요. 피고가 아닙니다. 서로 앉아있는 자리도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농담이었기에 표정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고다행히 피고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피고가 잠시 말을 멈추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필자의 진의를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사건은 원고가 50만원을 더 양보하기로 하면서 원만히 합의돼 분쟁이 종결됐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면서 원고가 피고에게 한 "이제부터는 서로 만나도 싸우지 맙시다."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