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왜 남의 채무를 면제하나 ②
   
▲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송경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면책의 목적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로 하여금 기존 채무의 압박과 굴레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와 미래를 설계할 깨끗한 상태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고 일본 최고재판소는 "면책이 채권자에 대해 불이익한 처우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파산자를 갱생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만약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채무자는 자산상태의 악화를 숨기고 최악의 사태까지 가는 결과가 돼 오히려 채권자를 해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면책은 채권자에 대해서도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미 경제적 파탄상태에 빠져 변제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압박만을 가하는 것은 채권자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채무자에게 일정한 요건 하에 면책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채무자의 의욕과 동기를 유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채권의 변제를 받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행한 '개인파산의 급증과 대책'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경제적 파탄자 내지 신용불량자의 증가는 도박·범죄·가정 파탄 등 사회불안을 초래하고 근로의욕 저하, 직장에서의 부정행위를 유발할 수 있으며 부실채권 증가로 인한 금융기관 부실화, 신용사회로의 이행 지연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면책제도는 채권자의 정당한 채권 실현과 채무자의 갱생이라는 이념이 상호 대립될 수밖에 없고 그 중 어느 것을 우선시킬 것인지는 각 시대의 현실적 상황에 따라 달라져 왔으며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실업 대란과 신용카드채무 등으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그로 인한 사회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파산신청과 면책허가율이 폭증했으며(1997년 5월29일 최초로 개인파산 선고결정이, 1997년 11월8일 위 파산자에 대한 전부면책결정이 각 내려졌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2000년도에 파산신청 131건, 면책허가율 57.7%이던 것이 2007년도에는 파산신청 5만116건, 면책허가율 98%가 됐다) 2004년 3월 2일 개인회생제도가 최초로 법제화됐다.

다만 법원은 채무자가 파산절차나 개인회생절차를 악용해 면책을 받거나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산신청 및 개인회생절차의 요건과 자격 강화, 채무자의 재산·소득관계에 관한 심사 강화, 불성실·허위 신청에 대한 제재 강화, 과다한 낭비나 도박 등으로 인한 파탄자에 대한 면책불허 등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면책제도에 대한 불만을 경험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이 그러한 독자들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는 없겠지만 면책제도에 대한 이해를 가져보는 조그만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