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법류/ 전문심리위원


 

   
 

18개월 된 딸을 둔 부부가 이혼하고 각자 재혼했는데 딸은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의붓아버지가 친아버지인 줄 알고 지냈다. 딸이 만 8세가 될 무렵 친아버지는 딸이 보고 싶다며 한 달에 2번 정도라도 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딸의 어머니는 딸이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 충격을 받아 올바르게 자라기 어려울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런 경우 친아버지가 딸을 만날 권리를 면접교섭권이라 한다. 현행 재판관행은 친아버지가 딸을 만나는 게 딸의 원만한 성장과 인격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때 이 면접교섭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친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딸이 친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원만한 성장에 지장이 있을지 없을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인천지법은 아동심리를 전공한 전문가를 재판에 참여시켰다. 이 전문가를 '전문 심리위원'이라 한다. 딸은 참석시키지 않은 채 딸의 친부모와 그들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들, 판사와 전문 심리위원이 모여 재판을 진행했다.

사건기록을 파악하고 재판에 참여한 전문 심리위원은 딸의 친부모와 직접 문답을 나눈 후 딸이 당장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 원만하게 성장하는데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딸이 만 12세쯤 됐을 때 친아버지와 만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의견을 딸의 친부모가 받아들여 사건은 당사자 사이에 조정이 성립돼 종결됐다. 위 사건에 아동심리에 관한 전문가를 참여시켜 그의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당사자들이 수긍하게 되고 딸의 복지를 아울러 고려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에서는 지난 2007년 7월 전문 심리위원 제도를 도입했고 현재 위 사례처럼 실제 재판에 심리위원이 참여해 당사자들이 수긍하는 재판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사법개혁 내용을 보면 만 40세 이상 법률가 중에서 판사를 뽑겠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법률가를 판사로 뽑는다고 하여 그 판사가 다양한 전문적인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두루 갖췄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갈수록 전문성을 요하는 사건이 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전문 심리위원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데 국민과 재판부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형사재판에서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보통 국민의 경험과 지식을 재판에 반영하는 것이라면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국민 중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을 재판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