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 562 )
필자가 유소년 시절 때, 국군묘지와 중국인묘지가 있던 도화동 일대는 한적한 교외였다. 낮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대지기' 논밭 앞을 오가는 경인선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만 아득히 메아리 쳤다.
그 근처에 엉뚱한 이름표를 단 정거장 '제물포역'이 생기고, 맘모스 학교법인 선인학원이 들어선 것은 60년대 초 이후의 일이다. 법인 설립 과정엔 말도 많았는데, 그 규모를 본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홍수환 선수의 권투경기로 더 유명해진 선인체육관은 국내 최대를 자랑했고, 대학 본부, 도서관 등 대부분의 건물도 예사로운 몸집이 아니었다. 건물로만 보면 그곳은 걸리버여행기 속의 대인국이나 다름 없었다.
세간에서는 건물들이 한 세기를 족히 버틸 것이라고 평가했었다. 미군 부대에서 철근 등 각종 자재를 지원 받았고, 설립자 백인엽 씨가 진두지휘했으니 허투루 지었을 리 없다는 사회 일각의 견해가 없던 것도 아니다.
그 60년대의 작품들(?)이 행정타운 조성에 따라 헐린다고 한다. 타운 조성이야 환영이지만, 시가 현 청사를 신·개축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구 인천대의 견고한 건물군을 활용하자는 안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재개발사업 활성화'만을 위한 제안이 아니다. 이 지역이 시내 여러 구와 맞닿은 대단위 중심 부지인데다가 마침 비어 있다는 것은 선진 도시계획을 할 수 있는 천재일우요, 한국 행정사상 행정 비용의 낭비를 막은 큰 본보기가 되리라 믿는다. 당장의 미봉적 실익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 철학이 절실한 시점이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