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대지 인도네시아
2008년 8월 01일 (금, 제6일)

오늘아침 기온도 14℃이다. 아침에 서울에 전화한 우리일행의 말로는 서울은 연일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적도 바로 아래에 와있는 우리들은 피서 온 것 같다. 오늘은 부낏띵기 시내와 근교를 보고 파당공항으로 가서 항공편으로 5일 만에 수마트라 섬을 떠나 자카르타로 가려고 한다.

먼저 교외에 있는 가리이 시아녹(Ngarai Sianok) 계곡으로 갔다. 이곳은 부낏띵기의 남서에 펼쳐진 대협곡이며 인도네시아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파노라마 공원의 전망대에서 길이 4Km, 낙차 100m의 계곡을 내려다보면 그곳으로 내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근처에 있는 일본군 지하방공호에 갔다. 일본군은 1942년 3월에 자와 섬에 상륙하고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가지 3년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였다. 이것은 그 때 만든 대규모 방공호다. 방공호 안에 들어서니 지하도는 거미줄같이 사방에 뻗어 있다.

분도칸둥 공원으로 갔다.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오른쪽 멀리 드프 화산(해발2914m)이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것이 보인다. 구름다리를 건너 서쪽 언덕에 있는 콕크 요새에 갔다. 이곳은 네덜란드가 1825년에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빠드리 전쟁)에 대비하여 기지로 축조한 요새이다.

지금은 당시의 대포가 하나 놓여 있을 뿐 평화롭기만 하다. 근처에 있는 미낭카바우 박물관에도 갔다. 박물관에는 미낭카바우 양식의 건물에 관한 것, 혼례의상, 금관, 장식도구, 악기, 고고학적 발굴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에 동물원도 있다.

시내에 들어와서 '아타스 시장'에 들렸다. 어디나 시장은 활기에 넘치고 있다. 시장을 빠져 나오니 큰 시계탑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큰 시계탑이다. 버스로 돌아와서 '빤다이 시캇' 마을로 갔다. 이곳은 인도네시아의 전통직물과 목각 등이 유명한 곳이나 관광객도 별로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오후 12시 25분, 부낏띵기를 떠나 남동쪽으로 달렸다. 이제 길은 평지의 좋은 포장도로다. 1시간 30분 후 오른쪽에 바다가 나타났다 인도양이다. 조금 후에 파당(해발15m)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했다.

파당(Padang)은 인도네시아의 서·수마트라 주(州)의 주도이며 16세기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다. 16~17세기에 인도, 포르토갈, 영국, 네덜란드 등 나라와 후추의 재배와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 때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으나 영국의 세력이 강해지자 1781년~1784년과 1795년~1819년의 두 번 영국이 지배권을 차지했다. 1780년대에 가장 중요한 교역품은 금광에서 채굴된 금이었다. 그 후 금광의 채굴량이 감소하고는 커피, 소금, 직물 등이 주산물이 되었다.

우리들은 파당이라고 하면 얼른 수마트라 섬에서 일어났던 지진을 떠올린다. 1797년, 이곳 해안에서 발생한 진도 8.5~8.7M의 지진으로 높이 5~10m나 되는 해일(쯔나미)이 일어나 파당은 철저하게 침수되었다.

지진은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2명이 사망했다. 1833년에 다시 파당은 벤쿨루 주(州)에서 일어난 진도 8.6~8.9M의 지진으로 3~4m의 해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파당도 미낭카바우족의 중심지이며 2005년에 신공항이 완성되었다.

오후 5시 55분, 파당공항을 이륙하고 1시간 55분 만에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서 지난 5일간의 수마트라 섬 여행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