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대지 인도네시아 3
2007년 7월 29일 (화, 제3일)

또바에서는 분화이후 역사에 남는 큰 분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큰 지진은 여러 번 일어났다. 1987년에도 호수남쪽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또한 2005년, 수마트라 섬 서해안의 지진은 그 진원지가 또바호수에서 320km의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다. 또바호수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칼테라호수일 것이다.

호수면적 1103km²(백두산 천지의 141배), 호수주위 길이 176Km, 최대수심 529m, 수면의 고도는 해발905m이다.

이 지역은 바탁(Batak)문화의 중심지이며 옛날부터 농업과 어업이 활발하였으며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물에 대한 자연신앙이 지금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사모시르 섬의 한 곳을 보고 또바호수의 빠라빳(Parapat) 부두를 거처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시피록 마을까지 가려고 한다. 오전 7시 30분, 뚝뚝(Tuk Tuk)의 부두를 출발하고 20분 후 사모시르 섬의 또목(Tomok) 부두에 도착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낮은 언덕에 약400~500년 전에 번영했던 또바왕조 시대의 묘지가 있다.
 석관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높이 1m, 길이 3m의 2대왕 시다브다르의 석관이 눈길을 끈다. 앞면에 왕의 큰 얼굴, 그 아래에 호위사령관 사이드 장군의 부조(浮彫)가 있고 석관의 뒤쪽 위에는 왕이 사랑했던 여자 세나가의 석상이 올려져있다. 그 옆 석관은 마지막왕의 것인데, 그는 내가 태어난 1929년에 죽었다고 한다.
 
 묘지 가운데에 왕의 죽음을 애도하여 심은 떡갈나무가 있으나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지금 나는 오랜 역사의 흔적을 보고 있다. 시마닌도(Simanindo) 마을의 바탁박물관에 갔다. 이 건물은 전에 왕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

또목의 부두를 떠나고 40분 만에 또바호수의 빠라빳의 부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어제 메단에서 타고 온 버스를 타고 서둘러 시피록을 향해 떠났다. 30분 후 길가의 파인애풀 농장에 들려 싱싱한 파인애풀을 맛보았다. 파인애풀 껍질을 벗기는 농장작업원의 칼솜씨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놀랍다.

1시간 후 발리게(Ballige) 마을(해발1000m, 27℃)에 들리니 또바호수가 마지막으로 보인다. 기분전환도 겸해 시장구경을 했다. 오전 12시 조금 지나 빵구루란(Pangururan) 마을에 오니 작은 노천온천이 나타났다. 석회가 섞인 온천수에서 석회가 응고되어 하얀 산비탈이 보이고 온천수가 흐르는 주위는 모두 하얗다. 터키의 카파토키아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카파토키아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작다.

오후 1시 50분, 따르뚱(Tarutung) 마을의 중국음식점에 들렸다. 돼지고기 요리도 나오고 시원한 맥주도 있다. 이슬람 국가에 와서 돼지고기 요리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따르뚱을 떠나고 약 2시가 후 먼 앞산의 능선부근에 하얀 십자가가 보인다.

옛날 이 지방에서 첫 기독교 신자가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산 속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빠라빳의 부두를 떠나고 약6시간 반 지날 무렵부터 가끔 이슬람사원도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독교교회는 적어지고 이슬람사원이 더 많이 보인다.

해발700m정도에서 계곡의 험한 산길에 들어섰다.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길옆 경사면의 흙이 왕창 무너진 곳이 나타났다. 한 달 전, 이 부근에서 진도 6,5M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나도 한국에서 이 지진이 발생한 것은 알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고 떠나왔다.

그 곳을 지나고 한참 가고 있는데 길가에 듀리안 장사가 나타났다. 듀리안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오늘은 냄새가 지독해도 각오하고 먹어보리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하얀 듀리안을 입속에 넣었다. 맛있다. 입 속에서 녹는 것 같은 감각은 치즈와 같은 동물성단백질 비슷한 맛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일행 전원이 맛있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이 맛 본 듀리안은 나무에서 따서 5시간이내의 싱싱한 것이어서 심한 악취가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곳을 떠나 한참 후 약250m정도 도로전체가 아래로(약20m) 꺼진 곳이 나타났다. 중장비들이 부지런히 길을 정비하고 있어 한참만에야 겨우 지나갔다. 이것도 지진 때문이었을까? 어떻든 운이 좋았다.

약 1시간 후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산 속에서 가이드가 급하게 차를 세운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차에서 내리니 길옆 나무를 가리키면서 식충식물(食蟲植物)이라고 소개한다. 지금까지 TV에서는 보았으나 실제 식충나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식충식물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함정식으로 주머니모양의 기관에 꿀샘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으로 벌레를 유인하여 주머니 안으로 들어오면 위 뚜껑이 닫히고 먹이를 잡는다.

이와 같이 덫을 만들어 벌레들을 잡은 뒤 소화효소?세균, 또는 둘 모두를 써서 분해한다. 참으로 신기하다.

오후 5시 40분, 드디어 10시간 40분 만에 시피록(Sipirok, 해발950m) 마을의 방갈로에 도착했다.

오늘도 험한 길을 무사히 지나왔다. 밤에 해발950m에서 적도상공의 은하수를 시간 가늘줄 모르고 보고 있었다.



약 7만4천 년 전에
'또바'에서 화산이 분화하였다.
이것은 과거 200만년에서
제일 큰 분화이다.
이때의 분화로 넓은 범위에서
지하수가 분출하여 지반 침하하면서
'칼테라'가 형성되어
또바호수가 생겼다.
그 후 마그마의 융기가 일어나
인도네시아의 사모시르 섬이 생겼다.

▼ 1 약 400~500년전 번영했던 또목왕의 석관 2 빵구루란 마을의 작은 온천. 석회가 섞인 온천수에서 석회가 응고되어 하얀 산비탈이 보이고 온천수가 흐르는 주위는 하얗다. 3 시마닌도 마을의 바탁박물관 . 앞에 서있는 사람이 필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인구의 1%가 화산가까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와 섬의 위험지역에만 30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화산에서 떨어지지 않는가? 그것은 화산이 재해뿐만 아니라 혜택도 주기 때문이다.
 
화산의 혜택이란 비옥한 토양 때문이다. 열대의 격렬한 비, 스콜은 땅의 영양분을 씻어 내린다. 화산재는 영양이 빈약한 열대토양에 미네랄 등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화산은 '거대한 지하저수지'이다. 정상의 화구호(火口湖)에 물이 고이는 작은 것과는 다르다. 화산의 분출물로 된 토양은 다공질이며 가볍고 통기성, 보수성이 우수하여 토양은 빗물을 흡수한다. 토양에 침투한 물은 지하수로 되어 산기슭에서 샘으로 솟아나온다. 말하자면 산 전체가 거대한 물탱크이다. 솟아나온 물은 수로를 지나 논을 적신다. 화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온천, 지열을 이용한 발전도 활발하다. 지열발전의 잠재능력은 1600万KW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