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국가에게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동서고금에 많은 정의가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 이상주의다. 공통점은 없을까. 힘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국가 내에서의 권력 차지도 힘의 원리요, 국가간 이익 차지도 힘의 원리가 작용한다. 신수설, 계몽설, 계약설 등도 결국은 힘의 원리에 기반을 둔다. 동양적 사고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부국강병이 요체인 법가사상은 물론 중용의 도를 구현하는 유교사상 역시 전제군주로서의 강력한 힘은 마찬가지다. 노장사상은 어떠한가. 일체의 인위적인 행위를 배제하는 무위자연의 소국과민(小國寡民)론은 현실에 부합조차 어렵다. 왜 그러한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지배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에서 파생된 묵자적 저항도 결국은 힘의 원리에서 기인된 것이다. 국가의 원천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은 국가라는 틀 안에서 보호받기 위하여 국가유지에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 그 힘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목숨이다.
권력자는 힘을 움직인다. 국가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서가 이유다. 그런데 무궁한 국가가 있었던가. 결국 권력자의 욕심일 뿐이다. 설령 국가의 번영이 이루어져 그것을 누린다고 한들 한갓 소수 지배층의 몫이다.


아스타나 고분군
서기 7세기. 중원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체제를 구축한 당나라는 제국을 향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선다. 그것은 실크로드의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서역경영이다. 권력층이 정한 국가이익인 서역경영을 위해 국민이 동원된다. 징집령이다. 중원에서 신장의 변방은 너무도 먼 길이다. 살아서는 오기 힘든 곳, 그것이 국가를 위해 나선 국민의 길이다. 운이 좋아 살아온다 해도 늙은이가 되어온다. 무엇 때문에 나서는가.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누구 때문에 나서는가. 내 가족을 위하여. 정녕 그것이 정답인가.

한낮은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해질녘엔 교하에서 말에게 물을 먹인다.
나그네의 밥솥에는 모래바람이 드세고
공주의 비파소리에는 원한이 깊다.
야영하는 강산에는 성곽 하나 없고
눈비만 분분히 사막으로 이어진다.
북쪽의 기러기 밤마다 슬피 날면
오랑캐 아이 눈엔 두 줄기 눈물뿐.
해마다 병사의 뼈는 사막에 묻히는데
포도만 부질없이 한나라로 들어오네.

탐사단은 투루판에서 서쪽으로 10㎞ 떨어진 곳에 있는 교하고성을 향한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우산을 쓰게 만든다. 일 년치 강우량이 쏟아지려는가. 내리는 비가 반갑기도 하지만 흙으로 만든 성이 무너질까 걱정이 앞선다. 교하고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두 줄기 물줄기가 교차하는 곳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이다. 고창고성이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라면 교하고성은 흙을 파내서 만든 성이다.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이기도 했던 교하성은 천산남로와 천산북로가 갈라지는 요충지에 위치한 까닭에 여타 국가의 노림 터가 되었다. 그러하매 일찍부터 중국이 차지하여 서역경영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장식현이라는 국민도 국가적 지상명제인 서역경영을 위해 수만 리 떨어진 교하성으로 왔다. 모래와 바람, 천산의 변덕날씨가 적보다 더한 공포였다. 어둔 밤을 비추는 달만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있는가. 부모님과 누이동생은 잘 지내는가. 오호라 달구, 오호라 달구. 혼이라도 고향땅에 편히 갈 수 있으려나. 뒹구는 시체는 백골이 되고 밤마다 고향은 눈물에 잠겼다. 애간장 녹이는 부모를 대신하여 누이동생 아모가 탄원서를 올렸다.

무릎 꿇고 이렇게 눈물로 간청하옵니다. 하나 뿐인 오라비가 군역에 들어가 교하거방(交河車坊)에 배속되었습니다. 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 부모는 늙고 병들어 집안도 엉망이옵니다. 오라비를 대신해 처녀인 저를 잡아가시고 부디 오라비는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또 원하옵니다.

애끊는 아모의 탄원서는 휴지가 됐다. 그녀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한 채 탄원서(歎怨書)가 되어 그녀와 함께 묻혔다. 천 수백 년이 지나 곱고 아름다운 그리하여 너무도 서러운 그녀의 소망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이 오백 년을 공동묘지로 사용한 아스타나 고분에서다. 아스타나 고분군에 도착하자 다시 폭염이 시작된다. 비스듬히 경사진 지하고분은 지열까지 가세해 입구부터 숨이 막힌다. 고분의 묘실마다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역 머나먼 곳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감은 자는 각종 풀꽃과 새를 그렸다. 젊어서는 말을 삼가고, 중년이 되어서는 돌처럼 굳세며, 늙어서는 비워두라는 교훈이 담긴 인생도가 그려진 고분 또한 특이하다.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의 장소'다. 오라비와 상봉하지 못한 아모는 오늘도 휴식처에서 오라비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가.

링컨이 말했듯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는 오늘날 산재하다. 그런데 정녕코 그러한가. 국가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권력자의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하기에 국가의 근원인 국민 또한 심사숙고하고 혜안을 발휘해야 한다. 국민의 목숨이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인천일보 실크로드 특별취재팀>


고창고성과 함께 투르판 인근에 위치한 교하고성. 두개 강을 끼고 절벽위에 세워진 교하고성은 천연의 요새였지만 1천년이 넘는 세월 앞에서는단지 흙으로 만든 나약한 성에 불과했다. 현재 대부분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흉물처럼 버려져 있지만 점차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가고 있다.
교하고성은 두 강줄기 사이에 있는 절벽으로 길이 1650m, 폭 300m의 천연 요새다. 현지인들은 야르허투라고 부른다. '야르'는 위구르어로 '절벽'이란 뜻이고, '허투'는 몽골어로 '도시'라는 뜻이다. 2개의 언어가 합성되어 절벽 위의 도시라는 뜻이 생겼다. 이곳은 고대 서역 36개 국가 중 차사전국의 도읍지였다. 6세기 초에 지어졌고, 현존하고 있는 성의 흔적은 당나라 때의 건축물이다. 한서 서역전에 의하면 당시 차사국은 700가구에 6,000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였는데, 한무제가 멸망시키고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병사들은 이 일대에서 농지를 경영하며 평시에는 농민으로, 전시에는 군인으로 차출 당했다. 1994년부터 2년 간 유네스코에서 유적 발굴이 진행됐으며,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스타나 고분군은 투루판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하 분묘로 고창국과 당나라 시대 귀족의 묘이다. 3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조성되었고, 약 400여개의 고분이 발굴되었다.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이라 하며 영원히 잠든 묘지 또는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무덤에서 발굴된 미술품은 주로 묘실에 그려놓은 벽화, 관을 덮을 때 사용한 비단과 마포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묘를 지키는 진묘수 조각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