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안의 12일 국회 처리가 무산되면서 한나라당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이번 추경안은 정부의 고유가 민생종합안정 대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추석전 민생안정, 추석후 본격 정책드라이브'라는 로드맵의 주요 축이었다.

   원내 과반인 172석의 거대 여당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을 입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당초의 공언은 첫 출발부터 허언(虛言)이 돼버렸으며, 앞으로의 집권여당의 기능 수행에 있어 험로를 예고했다.

   특히 추석전 추경안 통과를 확신했던 원내사령탑의 지도력에 문제가 집중 부각될 것으로 보여 한동안 한나라당은 추경안 무산에 따른 후폭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지도부가 18대 국회 첫 `강행처리'라는 악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추경안 처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원구성 이전부터 "배를 물 위에 띄우면 순항하기 마련"이라며 172석의 힘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쳐왔으나, 결과적으로 `무늬만 172석'임을 이번에 입증했다.

   이번 추경안 처리 무산의 가장 큰 원인이 국회 예결특위에서의 `정족수 부족'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체 재적의원(50명)의 과반인 29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과 22명만이 출석하는데 그쳤다.

   추석연휴를 앞둔 의원들이 본연의 업무인 의정활동을 내팽겨치고 지역구 챙기기에만 몰두했다는 점도 비난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들 의원을 단속하지 못한 원내지도부의 책임론이 거론된다.

   홍 원내대표는 추경안 처리 무산 직후 열린 의원총회와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책임지겠다"며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고, 정책위의장단을 포함한 원내대표단 역시 집단 사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홍 원내대표는 추경안 문제가 현 원내지도부에서 불거진 만큼 추경안 처리를 조속한 시일내 마무리짓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원내대표가 추석 직후 원내대표직을 실제 사퇴할 경우 일단 원내지도부의 책임론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기국회가 진행중이어서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혼선으로 여파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홍 원내대표 개인의 정치적 타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독주 논란'이 이어지던 터에 불거진 일이라는 점에서 재신임을 통해 원내대표직을 그대로 수행해도 리더십이 예전같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의원들의 공개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홍준표 원내지도부 체제의 입지를 약화시킬 요인이고 당내 갈등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선인 김용태 의원은 이날 `9월11일 한나라당 대참사'라는 글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의원들의 안일한 대응태세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돌릴 수 없다"며 "그간 홍준표 원내대표단의 행태가 빚은 `구조적 참사'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원내대표단은 원구성 협상에서 수차례에 걸쳐 전술적 오류를 범하면서 민주당에 끌려다녔고, 이 와중에 원내대표가 소집한 의원총회나 국회 회의가 수없이 연기되고 취소됐다"고 소개하고 "이런 상황에서 `오늘도 본회의가 열리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일부 의원을 탓하겠느냐"며 "이번 참사는 양치기 소년의 비극"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홍준표 원내대표단은 신속하게 후임 원내대표단이 구성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추경안 처리를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김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한 의원은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민주당을 설득해오라'는 말만 되풀이, 결국 민주당의 의도대로 가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김 의장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