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43년전부터 알게 된 미국여성 한 분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핸더슨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중동의 쿠웨이트 출장길에 유럽을 들러서 오래간만에 미국 방문길에 오르게 된 것은 바로 이분 때문이었다. 금년 88세 생일 초청을 받고 마다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88세를 미수(米壽)라고 각별히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특별하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미국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1965년 대학 졸업년도에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땅을 처음 밟았을 때 홈스테이로 2주간을 머물게 된 것이 첫 인연이었다. 당시 뉴욕주 북부지방 오네이다에서 살고 있던 부부는 유명한 식기(食器)제조회사의 간부로 일하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온 학생을 자존심 상하지 않게 보살펴 주던 정에 이끌려 지난 43년 동안을 서로 인연을 끊지 않고 지내왔던 터였다. 20여년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재혼했으나 또 다시 홀로된 후 이제는 동갑내기 은퇴자와 친구관계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골공항에 차를 몰고 나온 88세의 커플은 일생을 함께 지낸 부부 같은 다정한 모습이었다.

미국 북부지방에서는 플로리다주나 하와이 같은 곳으로 많이 은퇴하지만 산많고 물 맑은 노스캐롤라이나주도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커플의 88세 생일파티와 이집 저집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많은 은퇴자들을 만났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퇴역장교, 대기업 간부출신, 전문직으로 일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일을 도우면서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핸더슬빌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은퇴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봉사하는 현장을 보면서 은퇴문화와 그 나라의 품격이 비례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