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광 선생 여행기
2007년 8월 08일 (수, 제18일) 텔라비 시내에 전사왕이라고 불리던 엘레크레 2세의 기마상이 서있다. 그의 옛 궁전 터는 성벽으로 둘려져 있고 교회와 미술관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엘레크레 2세의 기마상 부근에 800년 된 짜타리 나무가 있는데, 우리일행 13명이 팔을 벌려 둘러설 정도로 큰 나무다. 텔라비를 떠나고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으로 가는 길에 그래미 교회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1465년에 건립되었다는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언덕 위의 성채교회다.
오후 2시 50분,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의 국경에 도착하니 그루지야 출입국사무소 앞에 큰 간판이 세워져 있다. 자세히 보니, 새로 건축하려고 하는 출입국사무소 건물과 국경주위가 깨끗하게 단장된 것을 그린 조감도이다. 그림 아래 설명은 미국공병대가 공사를 하고 그루지야정부에 기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국경건물은 낡고 주위 도로포장도 엉망이어서 이 일대가 지저분하다.
우리들은 차에서 내려 자기 짐을 가지고 한 사람씩 여권심사를 받은 후 그루지야 국경을 넘어 갔다. 도로가 파인 곳이 많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34℃의 더위 속을 큰 가방을 질질 끌면서 약 200m를 걸어 아제르바이잔의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얼른 수속을 하지 않고 우리들이 거의 모인 다음에야 아제르바이잔 세관원이 나와 누가 한 사람 짐을 가지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형걸 선생이 자진하여 큰 가방을 가지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형걸 선생의 가방 속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 우리들은 모두 감탄했다. 가방 속에서 아르메니아의 지도가 발견되자 즉시 압수당했다. 우리들은 무슨 영문이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출입국사무소 검사관은 우리들보고 아르메니아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 내놓으라고 한다.
다음 사람이 들어갈 차례여서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피했다. 혹시 내가 지명되면 큰일이다. 내 가방 속은 정리되지 않아 엉망이다. 우리 일행 전원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할 것만 같다. 더구나 내 가방 속에는 몰도바의 Miestii Mici wine-making plant의 지하 와인 저장동굴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받은 와인과 샴페인이 한 병씩 들어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이므로 틀림없이 술은 압수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 한 사람이 들어오라고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시선이 마주친 황세옥 선생이 걸렸다. 이번에는 아르메니아에서 구입한 비디오테이프를 압수당했다. 그다음은 김효식 선생이 자진해서 세관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것이 나오지 않자 세관원은 큰 소리로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왜? 그렇게 까다로웠는가 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며 우리들은 아르메니아를 지나 왔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인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이 있고 아제르바이잔에는 아르메니아의 영토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가 있으며, 그 곳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를 자국으로의 행정적 편입을 주장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1989∼1991년, 이 지역에서 내전이 일어났고, 1992∼1993년에는 두 나라가 전면전으로 돌입했다. 이 전쟁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정치적 혼란과 함께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으며,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아르메니아 군대에 넘겨주게 되었다. 1994년에 이루어진 휴전으로 전쟁은 수그러들었으나, 사실상 분쟁의 정치적 해결에는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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