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의 요새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였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이다. 이런 연유로 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의 남한산성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했다.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현재의 남한산성 축성은 인조 2년(1624)부터 시작돼 인조 4년(1626년)에 완공됐다.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았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산성 내에는 이때 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건설됐으나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아직도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도 있고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김훈의 역사소설 등장 이후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연주봉옹성 
<문화재>

▲행궁
행궁은 도성 안의 궁궐이 아니라 임금이 거동할 때 머무는 별궁 또는 이궁을 말한다. 조선조의 행궁으로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부안행궁, 온양행궁등이 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 이라 불렸다. 이 행궁은 상궐, 하궐로 구분되고 좌전(행궁의 종묘), 우실(행궁의 사직단)이 뒤에 설치되었다.
또 행궁 뒤 언덕에는 숙종때 재덕당이 세워졌고, 하궐 앞에는 정조 때 한남루라는 외삼문의 누문이 세워졌다
여기서 상궐은 내행전(행궁의 내전)으로서 1625년(인조3)에 준공한 70여 칸 건물이며, 서쪽 담에 문이 있어 좌승당으로 통하였다.
또 하궐은 외행전으로서 상궐과 동시에 지었고, 상궐의 삼문밖에 있으며, 서쪽담의 문으로 일장각과 통하는 것으로 중정남한지에 기록되어 있다. 하궐의 규모는 154칸으로 광주부읍지에 전한다.
남한산성 행궁터는 1999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1차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2000년에 2차 발굴조사를 완료하였고, 2002년에 상궐 72.5칸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2004년 8월 하궐지의 발굴조사와 좌전(26칸)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고 2005년부터 한남루지 및 행궁주변 일곽을 조사, 하궐 복원 중에 있다.

▲수어장대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2층 누각과 건물의 왼쪽에 2동의 사당인 청량당으로 이루어졌다. 이 건물은 선조 28년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남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졌으며 유일하게 현존한다.
원래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 라 부르던 것을 영조27(1751)에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이층누각으로 증축하고 안쪽에는 무망루, 바깥쪽에는 '수어장대' 라는 편액을 내걸었으며, 서대라고도 불렀다. 수어장대의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루를 둘렀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익공식이다. 1층의 사방 1칸은 복도로 비워두고 정면 3칸, 측면 2칸만 장마루를 깔고 사방에 높이 45cm의 난간을 둘렀다. 2층은 1층 우측 뒷켠에 있는 사다리를 통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방에 판문을 달았으며, 판문에는 태극무늬를 그렸다. 천정은 연등천정이다.

▲연무관
연무관은 군사들의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돼 있다.
연무관의 규모는 100평이며, 처음에는 연무당 또는 학무당이라 불리던 것을 숙종이 당시의 수어사 이던 이재호로 하여금 개축케 한 후 연병관이라는 편액을 내렸고 22대 정조때 다시 수어영이라 개칭하였다.
현재 건물의 중앙에 연무관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군사들의 훈련과 무술 시합을 열어 뛰어난 무인의 인재를 뽑아 중앙으로 보냈으며 활쏘기 연습을 하던 활터가 있었다고 한다.

▲망월사
망월사는 장경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내에 있는 9개 사찰중 가장 오래된 고찰로 망월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이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 불상과 금자 화엄경 한벌, 금정 하나를 이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소실되었고 4종의 복원된 건물의 규모가 옛터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대웅전, 금당, 요사체 2동, 13층 적멸보궁탑과 병풍석은 망월사의 자랑이다.
망월사의 돌축대는 옛 망월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한며 대형 맷돌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숭열전
숭열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의 영혼을 함께 모시고 음력 9월 5일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으며 정조 19년(1795)에 숭열이라고 사액되었다.
완풍군 이서는 성을 쌓는데 총 책임자로서 공이 커 여기에 모시게 하였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2회 정제하고 향축은 예조에서 보내왔다고 한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 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 벽을 갖은 맞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남한산성 벚꽃
<자연환경>

▲소나무 숲
서울 및 경기지역에서 노송이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장소는 남한산성이 거의 유일하다. 남한산성의 소나무군집은 전체 식생면적중 19.07% 정도만 남아 있다.
전체 소나무의 연령은 70∼90년 생이고 약 72ha가 수어장대-서문-북문에서, 행궁터-숭렬전-연무관-현절사로 에워 싸여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소나무 숲은 일제시대에 마을 주민 3백3명이 국유림을 불하 받은 후 벌체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한 덕택에 살아남은 유산이다.

▲야생화
권역내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은 호랑버들을 비롯한 다릅나무, 서울제비꽃, 분취, 병꽃나무 등 5종이고, 이 곳이 분포북한계선상의 한 점이 되는 식물에는 쥐꼬리망초, 선피막이풀의 2종이 있으며, 분포남한계선상이 되는 식물과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이나 보호식물은 찾아볼 수 없었으나,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로는 장억새, 꽃장포, 태백제비꽃의 3종이 확인 됐고, 그밖의 희귀식물로는 단양, 영월 지역에서 드물게 자라는 병아리풀과 성곽이나 암벽 등에 드물게 잔존해 있는 부싯깃고사리가 확인되었다.
또한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단풍이 고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에는 산딸나무를 비롯하여 쪽동백, 때죽나무, 생강나무, 병꽃나무, 붉은병꽃나무, 당단풍, 복자기 같은 나무와 구절초를 비롯한 동자꽃, 패랭이꽃, 꽃향유, 자주쓴풀, 감국, 할미꽃, 병아리풀 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는 풀들이 확인 되었다.


수어장대 
<축제>

▲산성문화제
산성문화제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이 백제의 도읍지이자 국난 극복의 장소라는 '역사성'에 초점을 둔 축제이다.
매년 10월 열리는 축제로서 각종 풍물놀이와 공연, 전시 등이 잇따라 열리고,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산성소주 제작시연과 시음, 민속장터도 있어 흥겨움을 더한다.
남한산성 문화제의 가장 큰 볼거리는 대동굿과 숭열전 제향이다.
대동굿은 남한산성 축성과 병자호란 때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굿으로 전국의 무속인들이 대거 몰려오는 큰 행사이다.
 
/광주=송영규기자 blog.itimes.co.kr/yg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