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점철된 아르메니아의 역사
2007년 8월 01일 (수, 제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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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크라이나를 떠나 아르메니아로 가는 날이다. 얄타에는 공항이 없으므로 86㎞ 북쪽에 있는 심페로폴에 가서 항공편으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으로 가려고 한다. 예레반으로 가는 전날 밤은 심페로폴에서 숙박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얄타에서 자고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다.
그리하여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호텔로비의 매점 앞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하고 5시 30분에 얄타의 호텔을 떠났다. 3일 전 심페로폴에서 얄타로 올 때는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크리미아반도를 남하하면서 바프치사라이와 세바스토폴을 경유하였으나 오늘은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다가 고개를 넘는 짧은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얄타와 심페로폴 사이를 트롤리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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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원도의 평창과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두고 경쟁하다 이긴 곳이다. 우리들은 이번 여행계획을 짤 때 우크라이나에서 육로로 러시아로 들어가 '소치'에서 1박하고 그루지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국경통과가 여의치 않아 항공편으로 아르메니아에 가기로 했다.
이륙하고 약 40분 후 왼쪽에 흰 눈이 덮인 산이 나타났다. 코카서스 산맥의 최고봉이자 유럽의 최고봉, 엘부르스 산(Elbruz Mts, 해발5천642m)이다. 심페로폴 공항에서 아르메니아의 예레반 공항까지는 1시간 25분의 가까운 거리다.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니 정상에 흰 눈이 덮인 아라라트 산(해발5천137m)이 창문 오른쪽에 나타났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가 표착(漂着)했다는 그 산이다. 지금은 터키영토 안에 있으나 아르메니아의 국장(國章)과 아르메니아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의 라벨에도 아라라트 산이 그려져 있어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마음의 지주>로 되고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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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 학살 박물관'을 나오니 기온은 더 올라가서 37℃(15:25)이다. 근처에 있는 고문서보관소에 들렸다. 아르메니아의 고문서와 사본 등을 약 14,000점이나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끊임없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을 받아온 아르메니아인은 사본을 만들어 놓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말과 종교를 지키는 것이 아르메니아의 민족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층의 전시실에서는 아름다운 고문서 사본들을 볼 수 있었다.
고문서보관소를 나와 공화국광장부근의 책방으로 갈 때는 드디어 기온이 41℃까지 올라가서 걷기 힘들다. 공화국광장 주위의 건물은 모두 아름다운 돌로 지어졌다. 큰 불록 같은 석재는 모두 장미 빛 응회암(凝灰巖)을 잘 조합하여 시가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돌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목재자원이 적어 돌로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공화국 광장에는 전에 레닌의 동상이 있어 레닌광장이라고 불렸다. 이 광장 옆에 있는 책방에 들렀다가 오늘은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비극으로 점철된 아르메니아의 역사
아르메니아는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아르메니아인은 오랜 세월 내분과 전쟁을 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수시로 변하는 국경을 넘어 달아났다 돌아오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과거와 현재의 국경은 상대국가에 따라 변동됐지만, 흑해와 카스피 해는 민족이주, 종교싸움, 민족사이의 증오, 전쟁, 승리와 패배가 혼재하던 지역임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수없이 터키의 침략으로 전 세계로 흩어져버린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언제나 아라라트산을 생각하며 조국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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