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11. 촉한의 운명도 끝이로구나.


쓰촨성 멘주(綿竹)현에 있는 제갈쌍충사 입구. 제갈첨과 그의 아들 상이 이끄는 촉한의 7만 결사대가 등애군을 맞아 싸웠으나 안타깝게 패하고 촉한은 멸망했다.

"정서장군 등애는 행도호위장군제갈첨 휘하에 글을 드리오.
가만히 보건대 근대의 훌륭한 인재로는 공의 아버님만한 분이 없소.
지난날 초려를 나설 때부터 이미 천하가 셋으로 갈라질 것을 말씀하셨고, 형주와 익주를 평정하여 마침내 패업을 이루셨으니 고금을 통틀어 따를 사람이 없소.
지금 후주는 어리석고 나약하여 왕기가 이미 끝났소.
등애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대군을 거느리고 촉을 정벌하여 이미 많은 땅을 점령했으니 성도가 무너지는 것은 조석에  달려 있소. 공은 어째서 천명과 인심에 순응하지 않으시오?
의롭게 귀순한다면 등애는 당연히 공을 낭야왕으로 삼도록 표주하여 조종을 빛내도록 하겠소.
 
등은 마침내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음평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강유성을 공격했다. 강유성은 마막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약한 장수여서 위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곧장 항복했다. 마막의 아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편이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살했다. 등애와 그의 군사들은 오히려 마막 부인의 행동에 감동하여 그녀를 후하게 장사지내고 제사를 드렸다.

환관 황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후주가 위급함을 알았을 때, 등애군은 이미 성도 부근의 면죽까지 들이닥쳤다. 전의(戰意)를 잃은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갈량의 아들 첨과 손자 상이 나섰다. 제갈첨이 이끄는 7만 명의 결사대에 촉한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전략가인 아버지 제갈량의 후광만 입었을 뿐, 병법은 터득하지 못했음인가. 전황은 제갈첨에게 불리했다. 투항을 권유하는 등애의 편지가 최후의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제갈첨은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었다. 그의 아들 상 또한 죽음으로 뒤를 이었다.

충신의 계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늘이 뜻이 있어 촉한을 끝장내네.
그 당시 제갈량은 훌륭한 자손 두어
절의가 참으로 무후를 이을 만했네.


제갈쌍충사 귀퉁이에 있는 등애 부자와 종회상. 촉한을 멸망시킨 등애 부자는 후일 종회의 모함을 받아 낙양으로 이송중 이곳에서 죽는다. 후세인들이 이들의 소상을 만들어 영원히 벌을 주고 있다.

성도의 후주는 좌불안석이었다. 전의를 잃은 군신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도피하거나 오나라에 의탁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결론이 나질 않았다. 광록대부 초주가 나섰다.

오나라로 가는 것은 신하를 자청해야 하는데 작은 나라를 선택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두 번의 굴욕을 당할 수 있고, 남쪽은 복종할 줄 모르는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를 배신할 것임을 들어 반대했다. 그리고 권유했다.

현재 동오는 아직 조위에 굴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등애는 이 때문이라도 반드시 우리의 항복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를 특별히 예우할 것입니다. 만약 위나라가 예상외로 폐하에게 토지와 작위를 봉하지 않으면 저 초주는 친히 위나라로 가서 고대 선현들의 도리에 따라 끝까지 논쟁할 것입니다.

길은 한 가지, 위나라에 항복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후주 유선은 초주의 말에 따라 등애군에게 투항했다. 위나라 종회와 등애가 출병한지 고작 2개월 만에 촉한은 멸망하고 말았다.

심산유곡에도 길은 있다. 산새도 날지 않는 S자 길인 음평도를 달린다. 오직 부강만이 인적 없는 길을 따라오며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제갈량은 북벌을 하기 전에 전략상 이 길의 중요성을 알고 요소요소에 관문을 설치하고 방비를 튼튼히 했다.
하지만 강유가 이곳의 방위력을 삭감하였기에 등애의 공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쓰촨성 장유(江油)시 핑우(平武)현에 도착하여 마막이 지켰다는 강유관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유적은 간 곳 없고 관소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만 길옆에 쓸쓸하게 서있다.

조금 떨어진 마을 산중턱엔 애처로운 모습으로 서있는 비석이 있다. 겁쟁이 남편 마막의 항복에 반대하여 자살한 그의 처를 기리는 비석이다.

명나라 때 세워진 이 비석은 중간에 글씨가 한자 지워져 있다. 이는 충(忠)자 인데, '마막의 충의의 처'를 '마막충'으로 읽은 장사꾼들이 분노하여 파낸 것이라고 한다.

마막이 강유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등애군에 항전했다면 강유군의 협공으로 촉은 쉽게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군주와 신하 그리고 장수에 이르기까지 싸울 뜻이 없었으니 나라 또한 멸망할 수밖에. 부강을 흐르는 강물의 아우성이 애잔한 마음을 더욱 거세게 흔들어 놓는다.

멘주(綿竹)현에 있는 제갈쌍충사는 송나라 말기 문천상이 쓴 것이라는 '忠 孝' 두 글자가 청색의 사금파리 조각에 끼워져 대문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충효의 사당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공사중인 듯 장막이 쳐져있다. 제갈첨 부자의 소상을 다시 정비하고 있는 듯하다. 참배전 양쪽 문설주에는 부자를 기리는 대련이 걸려 있다.

'위란에 처한 국가를 근심하여, 신하는 싸우고 임금은 항복하니 다만 진췌하여 인을 얻었네. 이름난 선비 가문의 풍습을 믿으니 욕됨 없이 아비는 충에 죽고, 아들은 효에 죽었네. 이 몸을 내던져 재난을 구하러 달려왔건만 푸르게 빛남은 누구인지 아는가.'

제갈첨 부자를 죽이고 성도를 함락한 등애 부자도 후일 종회의 음모로 이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틀리다.

한쪽은 국가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다가, 한쪽은 동료와 권력다툼을 하다가 죽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후자에 냉랭하다. 역사는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충효양전(忠孝兩全)의 편임을 여실히 알 수가 있다.

/글·사진=허우범 인하대물류전문대학원 행정실장


익주파 불만 고조 촉의 멸망 부채질

제갈첨과 그의 아들 상을 기리는 묘지석.
등애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장렬한 죽음
을 택함으로써 제갈량의 후손임을 천하에
알렸다

이미 살폈듯이 촉한의 권력은 형주파와 동주파에 집중되었다. 토박이와 다름없는 익주파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궂은 일만 주어질 뿐 권력에서는 찬밥신세였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있기는 하되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았다. 익주파의 불만은 고조되고 결국 그들은 촉한의 멸망을 원했다. 천하통일이 곧 자신들의 불만족스런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천하를 통일할 것인가.

한나라 말년에 '대한자 당도고(代漢者 當途高)'라는 참언이 돌았다. '한나라를 대신할 사람은 대로에 우뚝 서있는 키 큰 사람이다.'라는 말인데 그 속에 숨은 뜻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한때 원술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의 자가 공로(公路)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죽자 다시 의문이 되었다.

익주파의 대표격인 초주가 스승으로 모시던 대학자 두경에게 이 말의 뜻을 물었다. 두경은 거침없이 위(魏)라고 했다. 어째서 위인가?

고대 천자와 제후의 궁문 밖과 양쪽 도로에는 한 쌍의 높고 큰 건축물이 있었다. 이를 일러 '궐(闕)'이라 하는데, 위(魏) 또는 위궐(魏闕)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관부나 관원을 조(曹)라고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당도고'는 조조의 위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한 초주는 촉한의 멸망과 위나라에의 투항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골몰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지어냈다. "선주는 휘를 비(備)라고 했는데, '완결하다'는 뜻이다. 후주의 이름은 선(禪)이라고 하는데, 그 글자를 풀이하면 '주다'는 뜻이다."

촉나라 멸망 1년 전인 262년. 궁궐에서 커다란 나무가 부러졌다. 초주는 부러진 나무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많아지고 커져 약속한 날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준비가 되었으니 어떻게 다시 오르겠는가." 진수가 해석했다.

"조(曹)는 백성이 많다는 뜻이고, 위(魏)는 크다는 뜻이다. 많고 크다면 천하 사람들은 당연히 모여들게 된다. 완전하게 추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면, 어떻게 다시 제위에 오르는 자가 있겠는가." 진수의 해석은 초주의 말과 일치한다. 진수가 위를 이어 탄생한 진(晉)나라의 신하였기에 이렇게 말한 것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진수는 초주의 행동에 대해 말하길 "유선의 일가가 평안무사하게 되고 촉한 백성들이 전란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초주의 계책 덕이 컸다."고 했다. 매국노로 낙인찍힌 초주를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수에게 초주는 지울 수 없는 스승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