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사변' 70주년 기념 사업 장쉐량 유물 50점 최초 공개
중국이 최근 '서안사변(西安事變)' 70주년을 앞두고 이 사건의 주역이었던 장쉐량(張學良·1898.6∼2001.10)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10살 때 장쉐량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는 사실을 전기를 통해 공개할 정도로 그를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장쉐량 재조명 작업의 테이프를 끊은 곳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 있는 장씨수부(張氏帥府)박물관. 이 박물관은 지난 6일부터 장쉐량유물전시회를 열고 그가 노년에 사용하던 유물 50여 점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들 유물 중 노년의 장쉐량이 식사할 때 사용하던 턱받이와 미키마우스 모자, 장난감, 인형 등은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군인 장쉐량의 모습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랴오닝성 정치협상회의 학술선전문학역사위원회 자오제(趙杰) 부주임은 이날 토론회에서 "99년 6월 친구를 통해 장쉐량에게 기와 1장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 데 장쉐량은 그것을 받은 뒤로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장쭤린은 만주사변으로 동북이 함락되는 바람에 끝내 원수림에 묻히지 못했다. 바로 장쉐량은 이곳의 기왓장을 받아들고 맘이 무거워져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맘이 없어졌다"며 "지금도 이 일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시안사변 당시의 전후 상황에 대한 구체적 증언도 언론을 통해 공개돼 중국 역사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장쉐량의 경호부관 출신으로 1980년 9월에 사망한 런차오수(任朝樞)의 아들 화리(華理·75)씨는 요심만보(遼瀋晩報)와 인터뷰에서 생전에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를 토대로 "장쉐량이 장제스를 같은 해 12월25일 석방하고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난징(南京)으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사람은 따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고 말했다. 장쉐량은 장제스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따로 비행기를 타고 난징으로 향하는 자리에서 부하들에게 "동북군의 깃발은 너희가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그는 전했다.
랴오닝성 안산(鞍山)시는 사회 각계 인사의 모금을 받아 '장쉐량출생지기념관'을 보수해 오는 16일 새로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다.
안산시 관광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장쉐량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기념비를 제작했다"며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기념비로 기네스북에도 이미 등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안사변은 1936년 12월12일 당시 만주에서 동북군을 이끌고 있던 장쉐량이 장제스(張介石)을 체포함으로써 공산당과 국민당이 힘을 합쳐 일본에 투쟁한다는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를 만든 사건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