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는 현재의 베이징(北京)을 경성(京城)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유주(幽州)라고 불렀다.
 현재 베이징의 베이산환루(北三環路) 찌먼챠오(冀門橋) 출구에 그 옛이름이 남아 있기도 하다.
 938년 요(遼)가 들어서면서 유주는 난징(南京)이 됐다. 이때 부른 이름으로 옌징(燕京)도 있다.
 1153년, 금(金)의 수도가 이곳으로 결정돼 중두(中都)가 됐다고 1215년 몽골 군대에 점령당해 궁궐이 모두 불타 버렸다.
 몽골족의 위안(元)은 중두의 동북쪽에 새로운 도성을 건축하고 따두(大都)라고 이름했는데 1368년 밍(明)에 의해 함락됐다.
 그뒤 베이핑부(北平府)라고 부르던 이 땅을 베이징으로 명명하고 일국의 수도로 삼은 사람이 바로 성조(成祖) 주띠(朱木隸)다.
 1644년, 산해관(山海關)을 넘은 칭(淸)도 여전히 베이징을 수도로 정했다. 난징을 수도로 정한 국민당(國民黨)이 1930년 베이징의 이름을 베이핑(北平)으로 고쳤으나 1949년 9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회에서 다시 베이징으로 고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도로 정했다.
 현재의 베이징 서남부를 부르던 이름 찌(冀)와 옌(燕)이 현재까지 옌징(燕京), 찌먼챠오 등으로 남았고 미윈(密云) 서남 쪽을 일컫던 위양(漁陽)도 살아남은 이름 중의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