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그려넣은 부채 모양의 꽁지깃을 수려하게 펼친 공작. ‘나목’에 몸을 부비며 겨울옷을 벗고 있는 꽃사슴. 길다란 목을 연신 앞 뒤로 쭉쭉 뻗으며 암컷에 구애를 하는 검은 타조….
 봄의 햇살엔 수면제가 녹아 있는 것일까. 그 옆 ‘우리’에 있는 일본원숭이 ‘하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자꾸만 앞으로 숙여지는 머리가 방아를 찧다가 허공 어디께 컥 하고 걸리면, 고개를 들어 깩 깩 하고 소리를 질러 댄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30분. 인천대공원 동물원에 봄이 오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진 않았지만, 동물들은 적당한 온기가 뭍은 봄기운을 맞으려 너도 나도 얼굴을 내민 채 저마다 초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맨 먼저 풍산개 ‘풍술’(암컷)이와 ‘제구’(수컷)가 세차게 꼬리를 흔든다. 반질반질한 코가 봄볕을 먹어 반짝 하고 빛난다. 그 옆에 혼자 있는 진돗개 ‘진중’이는 철장 너머 ‘제구’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질투를 내뱉는다. 삽살개 ‘청풍’(수컷)이와 ‘명월’(암컷)이는 남의 집 싸움에 끼여들 것 없다는 듯 딴청이다.
 인도·세이론·말레이시아에서 서식하는 공작 숫놈은 암놈들을 유혹하기 위해 꼬리를 활짝 폈다 접었다 하며 ‘봄바람’을 일으킨다.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지’ 서너마리의 암놈들은 숫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땅바닥만 쪼아댄다.
 원숭이 우리에 들어가자 ‘뭉치’가 왼손을 입에 물고 오른손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꽥꽥 거린다. 화가 났다는 표시다. 일본원숭이는 30여종의 소리를 내 의사를 전달한다. ‘뭉치’는 자기보다 큰 놈 등에도 올라타는 등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사고뭉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한 켠에선 지난해 6월에 태어난 아기원숭이가 그네를 타고 엄마원숭이는 행여나 아기가 떨어질까 노심초사 아기를 떠나지 못한다.
 몸무게가 100kg이나 나가는 꽃사슴들은 머리가 가려운지 철창에 머리를 비벼댄다. 겨우내 묵었던 헌 뿔이 떨어지고 새뿔이 솟아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서자 도망가기는 커녕 앞발을 쳐들며 달려들려고 한다. 동화속에서 만났던 꽃사슴과는 영 딴판이다. 그래도 촉촉히 젖은 검은 눈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내뿜는다. 꽃사슴들은 머잖아 암갈색에 하얀 점무늬가 선명한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155Kg의 몸무게에 2.4m나 되는 타조들은 조류라기보다 마치 선사시대 공룡처럼 보인다. 성큼 성큼 뛰어다니는 발이 말다리만큼이나 굵고 힘이 넘쳐 보인다.
 토끼우리로 가자 털생산용인 앙골라, 애완용인 라이온헤드, 고기생산용인 자이언트가 사이좋게 모여 있다. 작은 코를 벌름거리며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먹이를 먹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운게 아니다.
 양처럼 순하다고 했던가. 흑염소, 흰염소와 함께 있는 면양의 ‘우리’ 높이는 1m도 채 되지 않는다. 사람이 다가서자 머리를 내밀고 만져달라며 조른다. 귀밑 부분을 긁어주니 졸리운 듯이 눈을 껌벅거린다. 질투를 느낀 염소도 양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내민다. 한 관람객이 그런 염소를 만져주는 대신 입에 먹이를 넣어준다. 이곳엔 원래 양이 두 마리였으나 어떤 관람객이 타블로이드 신문지만한 비닐종이를 먹여 한마리가 숨지고 한마리만 남았다. 수의사 고종길씨(49)는 “담배꽁초나 이물질을 주는 사람들 때문에 동물들이 죽거나 병에 걸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인천대공원 동물원엔 호랑이나 코끼리 등 포유류는 살지 않는다. 이곳 동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순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44종 240여마리의 동물들이 한달 먹는 양도 1백만원어치에 불과하다. 이따금 공고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분양을 하기도 한다.
 동물원을 관리하는 장세환씨(34)는 “보다 인간친화적인 동물들을 비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동물들이 사는 동물원으로 특화시킬 것”이라며 “아이들이 와서 만지며 기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용시간 오전10시∼오후5시. ☎(032)440-6536.<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