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민'의 자식, 진실로 '국가권력'에 맞서다
태평양전쟁 시절 신관이던 아버지
인근 탄광서 도망친 징용인 300여명
탈출 돕다 고문 후유증으로 47세 사망
'역적의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았지만
귀국길에 감사 표한 조선인들에 감명

1970년부터 기록작가로 활동 시작
큐슈부터 사할린까지 강제동원 현장
수차례 찾으며 증언 청취·자료 수집
<청산되지 않은 쇼와> 등 책 57권 출간
일본 극우단체 위협 속 활동 이어가다
2017년 9월1일 83세 일기로 별세
▲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다큐멘터리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 중에서).
▲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다큐멘터리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 중에서).
◇ 다큐멘터리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 중에서

◇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민족은 자멸의 길

▶1945년 5월23일 밤에 누군가가 자살특공용 중폭격기인 사쿠라탄기에 불을 질렀다. 이에 헌병대는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조선인 출신 특공대원 '야마모토 다츠오'를 범인으로 의심해 끌고 갔다.

야마모토는 결백했다. 이를 증명할 단서도 충분했으나 결국 총살당하고 말았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쿠오카현 게이센마치에 있는 '아소 요시쿠마 탄광터'의 무연고 묘지에는 504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중 대부분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끈질긴 추적을 통해 지쿠호 지역의 탄광을 탈출하려던 조선인을 7시간 동안 때려서 죽인 일본인 노무관리자를 찾아내 자백을 받아냈다. 다큐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은 조선인을 죽인 일본인 노무관리자의 무덤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 후,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폐석들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이 등장한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조선인 광부들의 억울하고 초라한 무덤이다.

조선인들이 침략자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동원 되어, 이 곳에서 죽어 묻혀 있는 것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을 향한 하야시 에이다이의 시선'이 뜨겁게 느껴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 니시지마 신지 감독의 작품이다(제작 RKB매일방송). 2017년 9월 한국의 EBS 다큐 영화제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기도 했다.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민족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하야시 에이다이의 말로 끝을 맺는다.

▲ 군함도의 숙소 전경(국가기록원이 하야시 에이다이측으로부터 기증받은 기록물)./사진제공=국가기록원
▲ 군함도의 숙소 전경(국가기록원이 하야시 에이다이측으로부터 기증받은 기록물)./사진제공=국가기록원

◇ 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의로운 일본인

일제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 2017년 8월13일 대거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일본 서남 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 6000여 점을 기증받아 공개했다.

▶'군함도 전경' 은 하야시 에이다이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군함도는 전범기업인 미츠비시가 1890년 사들여 개발한 해저 탄광으로 혹독한 노동조건 탓에 지옥섬으로 불렸다. 지하에서 캐낸 석탄을 씻는 세탄장, 숙소사진 등이 있다. 또한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직접 만나 촬영한 사진과 면담 내용도 있다.

▶이와 함께 하야시 에이다이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직접 만나 촬영한 사진, 대담 내용 등도 함께 공개됐다. 도치기현 아시오 마을의 한 일본인 노부부는 “아시오 구리광산 고타키갱도의 조선인 광부가 도망을 오면 그들을 숨겨주고 주먹밥을 줘 달아나게 했다”며 당시 조선인에게 도움을 줬던 사실을 증언하는 사진도 있다.

▲ 군함도에서 채굴한 석탄을 씻는 세탄장(洗炭場). /사진제공=국가기록원
▲ 군함도에서 채굴한 석탄을 씻는 세탄장(洗炭場). /사진제공=국가기록원

◇ 하야시 에이다이의 인생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1933~2017년,林えいだい, 林榮代).

그는 태평양전쟁 때의 특공(카미카제)을 미화한 일본군부의 비인간성, 일제의 조선인 강제연행, 군함도 등의 탄광노동자로 숨져간 조선인들의 인권문제 등을 57권의 책으로 기록했다.

철저한 인터뷰와 증거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었다. 이에 감동한 일본인 영화감독 니시지마 신지는 2016년 그의 삶을 담은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抗い 記錄作家 林えいだ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도쿄도 등 일본의 지방문화센터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감독이 참여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매년 그의 기일인 9월1일에는 일본에서 추억모임이 열린다. 후쿠오카의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작물 읽기 모임'에서도 상영됐다. 기타큐슈시 환경 뮤지엄에서도 상영됐다.

그러나 그의 저서 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단 한 권뿐이다. 이토록 한국인에게 고마운 하야시 에이다이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망할 시점까지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생소했다. 심지어 한국의 가장 큰 인터넷 검색포털에도 그의 이름, 프로필 등이 검색되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그의 팬이 급히 포털에 등재를 신청하기도 했다.

▲ 강제징용 조선인의 도피를 도운 아시오(足尾) 마을의 일본인 노부부./사진제공=국가기록원
▲ 강제징용 조선인의 도피를 도운 아시오(足尾) 마을의 일본인 노부부./사진제공=국가기록원

◇ 탈출한 조선인을 돕다 죽은 부친

하야시 에이다이는 1933년, 큐슈 후쿠오카현 사이도쇼에 태어나서 지쿠호 탄광지대에서 성장했다.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이던 그의 부친 '하야시 토라지'는 인근 탄광에서 도망쳐 나온 조선인 강제징용자 300여명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왔다. 그 후 부친은 특별고등경찰에 끌려가 1주일간 고문을 당했고, 집으로 돌아온 뒤 한 달 만에 심장마비로 47살의 나이에 숨졌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이때부터 하야시 에이다이는 '비국민, 역적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결국 아버지를 잃고 빚만 남았지만, 그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잊지 않고 찾아와 돈을 놓고 간 조선인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1955년,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와 광부로 일하다가 도바타시(현재 기타큐슈시) 직원으로 일했으며 한때 기타큐슈 공업지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운동을 벌였다.

1970년, 도바타시 직원을 사직하고 기록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부친이 구해준 그 조선인들이 조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건네 준 10엔짜리 지폐에 대한 기억 때문이였다. 이 체험은 그의 '반권력, 침략자에 저항'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큐슈부터 사할린까지 조선인의 강제 동원의 한이 서린 현장을 수차례 방문했다. 일일이 관련자 증언을 청취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문제를 기록했다. 결과물로 그가 쓴 책은 <강제연행 강제노동-지쿠호 조선인 갱부의 기록>(1981), <여자들의 풍선폭탄>(1985), <청산되지 않은 쇼와>(1990), <잊혀진 조선인 황군병사>(1995), <대만고사의용대>(1998) 등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극우단체로부터 여러 차례 살해 위협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평화협동저널리스트 기금상' 등 여러 상들을 받았고, 2017년 9월1일 폐암으로 별세하기 직전까지 기록활동을 계속했다.

 

◇ 무엇을 위해 기록했는가, '탄압'의 근원은 '권력'

“저는 (제국주의) 국가의 적인 '하야시 토라지'의 자식입니다. 군국주의자들이 말하는 '비국민'의 자식입니다. '국가권력'은 왜 평화롭게 살던 사람의 목숨까지 권력을 이용해 뺏는 것일까. 역사는 권력에 대한 (기록자의) 저항이 중요합니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자신의 저서에서 '국가권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탄압'의 근원은 '권력'에서부터 온다고 보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역사를 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한다. 그렇기에 진실을 말해주는 '역사적 기록'이 필요하다. 그의 삶은 온통 '권력에 의한 피해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의 기일엔 '하야시 에이다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일본에서 열리고 영화도 상영된다. 코로나19 위기가 끝난 후 한국에서도 그의 다큐멘터리가 자주 상영되고, 그를 기억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리길 기대한다. 또한 조선인을 주제로 한 그의 저서는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김신호 기자 kimsh58@incheonilbo.com

인천일보-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