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다가오는 숨결

오랜만에 책상정리를 했다. 자주는 아니라해도 사실 꼭 필요한 과정이긴 하다. 시간이 지나면 필요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왜 그 당시는 그리도 중요하게 여겨졌을까 싶은 메모도 나오고, 가끔 신통하게 여겨지는 내 생각의 조각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난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의 필체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빼곡히 들어선 전화번호와 이름들. 한국과 미국 각 지역에서 살고 있는 친척들, 교회 식구들의 이름이 촘촘히 기록된 것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낯익은 필체에서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책상에 앉아 그 종이에 번호를 적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싶어 먹먹한 가슴을 쓸어야 했다.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의 이름들을 쓰면서 흐뭇해 하셨을테고, 사위들의 이름을 쓰면서는 조금 아쉽고 애가 타지 않았을까. 항상 딸들에 대한 자부심이 컸는데, 생각만큼 넉넉하게 살고 있지 못해서 어쩌면 다소 마음이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

엄마는 유방암으로 키모테라피를 마치고 수술도 해서 나은 듯 싶었는데, 일년 후 다시 재발됐다 그런데. 나이 여든을 넘은 상태에서 다시금 번거로운 치료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고, 대신 약을 복용하면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감사함으로 기쁘게 생을 마치겠노라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나 만큼 행복한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이리 말씀하시던 엄마. 항상 입에 찬송을 담고 노래를 부르셨다. 밤중에 부엌에서 불을 밝히고 성경을 읽던 모습, 묵상 혹은 소리 내어 기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나오는 듯 가슴이 세미하게 떨린다.

미국 이민생활이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일을 해야할만큼 삶이 녹록치 않다. 약 40년 전, 이미 성장한 세 자녀, 엄마, 아버지 모두 다섯명의 어른이 작은 폭스바겐 버그Bug를 타고 교회에 가면 주위사람들이 웃곤 했다. 그 작은 차에서 꾸역꾸역 사람이 나오는 모습이 재미있었을까 아님 안타까웠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그로서리 장을 보러 나가는 날은 미국 수퍼마켓의 엄청난 규모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쇼핑 카트를 가득채우고, 등심고기를 사다가 오랜만에 로스구이로 배불리 먹으며 가족끼리 즐거운 식사를 했던 기억이 아른하다. 그 곳에서 손자들과 손녀들이 태어났고, 그들이 이미 대학을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거나 대학을 다니는 등 제법 안정된 삶을 이뤘다. 아버지 곁에서 항상 소녀같은 모습으로 지냈던 분이었어도, 막상 먼저 아버지를 보내시고 난 이후 병치레를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당차고 씩씩한 그러면서도 넉넉한 감사의 마음이었는데. 아, 엄마의 기억이 어쩌면 이렇게 새삼스러운 지 버거울 정도다..

엄마의 추모예배 1주기가 곧 돌아온다. 아마도 잠시 미국 집에 다녀와야 할 듯 하다. 미국 현지에는 백신접종이 무섭게 이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추모공원 야외 묘 자리는 벌써 연한 녹색 잔디가 풍성할 터이다. 유난히 핑크색을 좋아하셨던 엄마. 특별히 올해는 꽃무늬가 유행인 듯, 하늘하늘한 질감의 주름스커트와 드레스가 풍성하게 널렸다. 난 색채가 화려한 옷보다 검정, 회색, 아이보리 등의 무채색을 주로 입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외모에 자신없음을 보충하기 위한 몸짓이랄까 연한 파스텔 색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분홍 꽃무리가 올망졸망 새겨진 드레스를 입고 엄마를 만나러 갈 참이다. 마치도 내가 엄마의 분신이 된 것처럼. 함께 가스펠 노래를 부르며 은혜를 나눴던 순간을 되돌릴 참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은혜이고,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