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센터 등 치유 공간 예정에도
사건 진상·책임 규명은 아직도 깜깜
지난 3월 초 세월호 기획 연재를 준비하면서 편집국 첫 기획회의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관련기사 3·14면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된 현재 세월호는 개인 또는 사회 공동체에 어떤 의미일까, 과거형 아니면 현재형, 미래형일까, 슬픔의 기억을 넘은 희망은 무엇일까, 남은 자의 과제는 어떤 것일까, 진실규명의 목소리 등등.
회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쪽지에 적힌 다양한 주제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무거웠고 선택하기도 힘들었다.
고심 끝에 슬픔의 기억을 넘어 희망의 노래를 기록하기로 정했다. 유가족의 치유 과정과 변화된 삶, 그리고 그 슬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 치유의 공간 등을 담기로 했다.
취재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유가족 인터뷰는 더 그랬다. 유가족은 덤덤하게 인터뷰에 임했지만 이를 기록하는 기자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야 했다. 오히려 유가족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어야 했다.
4·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수인(당시 단원고 2학년)이 엄마, 김명임(54)씨는 인터뷰에서 “아직도 여전히 세상과 단절한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계신 유가족분들이 계세요. 한 걸음만 용기를 내주세요. 언제든지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 손 꼭 잡아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수연(당시 단원고 2학년)의 아빠 4·16 희망목공협동조합 이재복(57)씨는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달라져야 해요. 우리 아이들은 하늘로 보냈지만 다른 아이들은 바뀐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유가족의 말 한마디, 말 한마디가 그동안 세상살이에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이었다.
13일 오후 수원시 행궁동의 한 가정집.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여성 5명은 세월호 사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했고 지금 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 기록은 이랬다. “실질적으로 뭔가 변하는 것이 없어 힘들고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우리도 어쩌면 잊으려 한 것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모임을 통해 그래. 이렇게라도 하자. 작지만 이 역할이라도 하자.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해보자고 되뇐다. 멈추지 않겠다”고.
'함께하는' 뜻을 4·16연대 공동대표 정종훈씨는 한 책에서 “유가족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마음으로 지냈다”고 표현했다.
치유의 공간도 속속 마련됐다. 인천 세월호 추모관, 트라우마센터, 기억교실, 안산 추모공원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늦었지만 국가가 나서서 세월호 아픔을 보듬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획연재를 마치면서 몇번이고 되묻는다. 과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지. 아직도 유가족과 많은 시민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세월호 사건 진상과 책임 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2017년 정권교체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었던 유가족들은 이 어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실감하고 있다. 일명 촛불혁명을 말하는 현 정권이 진실 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304명이 별이된 날을 다시 맞고 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채.
/기획 취재팀 1kkw517@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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