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가난의 책임 돌리는 세상 속 손 놓지 않는 청소년들 통해 희망 찾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읽고
빈민운동 투신했다 조세희 작가 조우도
소설이 직시했던 시대적 문제의식 계승

20년 전 쓴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같이
빈곤 화두로 청소년 분투기 신간에 담아

주인공 세 명 성장·연대하는 이야기로
가난 혐오하는 편견에 직면한 청년들에
서로 곁을 내어주는 방식의 위로 제안

소설 속 '은강'으로 묘사된 인천 중·동구
제물포고·송도중 이전 움직임에 우려
▲ 김중미 소설가는 “현실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작가이기 때문에 외면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김불이와 그의 가족들이 서울 달동네에서 쫓겨난 뒤 정착한 곳이 '은강'이다.

이 허구적 장소가 김중미 작가의 최신작 <곁에 있다는 것>(사진)에 그대로 되살아났다. 이 책은 인천 은강구 한마을에서 나고 자란 열아홉살 지우와 강이, 여울이의 이야기다.

김 작가는 이번 장편소설에 '은강' 지명을 사용케 해달라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판사에 청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은강이 김 작가가 사는 인천 만석동을 모티브로 했다는 공통점도 있겠으나 이 책이 김중미 작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근원이 됐기 때문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김중미 작가는 2000년도에 인천 동구 만석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펴냈다. 20년이 흐른 지금 세상에 나온 <곁에 있다는 것> 역시 인천의 원도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가 인천 중·동구 일대에서 공동체 교육 활동을 했던 경험이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였던 은강의 2000년대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책은 '내가 사는 곳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인 은강이다'라는 말로 시작하죠.”

그는 책 작가의 말을 통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와의 인연을 소개한 적 있다.

“1997년 7월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 지으러 다락으로 올라가는데, 흰머리의 낯선 사람이 뒤에 있는 거예요. 순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어요. 바로 조세희 작가였기 때문이죠. 제가 아는 척을 하자 '저를 아세요?'라고 되묻더군요.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 소설을 읽고 빈민운동을 하게 됐어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제가 몹쓸 짓을 했네요'라고 답했어요.”

이때의 조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직시했던 시대적 문제의식만큼은 김중미 작가 개인과 또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커다란 줄기가 되고 있다.

 

#왜 여전히 '가난'인가

이번 작품에서도 김중미 작가는 빈곤을 화두로 던졌다. 소설 속 청소년은 가난한 은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다. 은강방직 해고 노동자 이야기도 흐른다.

20년 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가난과 지금의 가난은 어떻게 다를까.

“난쏘공 시절 대부분이 노동자였고 서민이었죠. 사는 건 거기서 거기였어요. 시골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면서 도시에 대규모 빈민들이 생겨났죠. 대다수의 노동자 권리를 보장해줄 노동조합이 활성화되기도 전인 그런 때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의 불평등과 빈곤은 원색적이었고 뒤틀림이 없었다고 그는 역설했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가난의 형태가 달라진 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으면서였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생기고 노동의 방식과 노동자들의 지위 또한 바뀌었어요. 노동자들이 도태되지 않으려면 개인적 능력을 길러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형성됐죠.”

이전에는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었던 빈곤이 개인적 능력의 문제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가난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으로 가난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꾼 것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명확한 갈라치기였습니다.”

김 작가는 이런 과정을 목도하면서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으며 살아왔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곁에 있다는 것>은 바로 이에 대한 기록이다.

 

#은강이 은강이기를

두 소설에서 '은강'으로 설명되는 인천 중·동구 지역은 지금 사람들이 떠나는 곳이다. 학교도 떠났고 떠나려고 한다.

중구에 있는 제물포고등학교와 송도중학교 역시 최근 국제도시로 옮겨갈 움직임을 보인다.

“한때 명문이었던 학교의 명성을 굳이 신도시에서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학교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살아가는 학생들과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걸 너무 간단히 무시해요. 학생 수가 줄었고 시설이 낡았다고요? 원래의 존재인 이곳에 투자하면 왜 안될까요.”

돈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의 욕망이 언제나 정당해 보이는 사회를 김 작가는 가장 우려했다.

 

#연대하며 곁에 있을

-김여울, 너 그거 알아? 별은 정면으로 볼 때보다 곁눈질로 볼 때 더 반짝인다. 이렇게 별 하나를 골라서 똑바로 보다가 곁눈질을 해 봐. 그럼 별이 정면으로 볼 때보다 더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여. 한번 해 봐.- (<곁에 있다는 것> 241쪽)

소설 속 세 명이 10대 주인공은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와 마주하며 현실을 깨닫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또 연대할 줄 안다.

10대의 마지막 날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마음을 나누며 소설은 끝이 난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가난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가난을 혐오로 동일시하는 편견에도 맞서야 할 때 김중미 작가는 서로 곁을 내어주는 방식의 위로를 제안한다.

“손을 잡는 것이지요.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꿈도 다르지만 여전히 손을 놓지 않는 청소년들을 통해서 희망을 찾습니다.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서서 서로에게 말할 수 있겠지요. '네 탓이 아니야'라고요.”

김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성폭력 피해를 다룬 책을 준비 중이다. <곁에 있다는 것>을 쓸 때도 쉽지 않았던 그는 이번에도 녹록지 않은 마음의 하중을 견뎌야 할 것 같다.

“작가라면 시선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무겁고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또 누군가는 계속해서 해야 할 이야기지요.”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