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프로야구 새로운 라이벌 구도, 신세계 대 롯데

우리나라 유통업계 양대 라이벌 롯데와 신세계가 대결 장소를 한국 프로야구로 옮겨 새로운 라이벌 대전을 치릅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월 23일 SK텔레콤으로부터 인천 연고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를 1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신세계는 3월 5일 야구단의 새 구단명을 '쓱(SSG) 랜더스(Landers)'로 정했으며, 미국 메이저리그 베테랑 강타자 추신수 선수를 27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금액으로 영입했습니다.

신세계의 유통업계 경쟁자인 롯데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창단 멤버로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자이언츠를 운영 중입니다. 즉 한국 프로야구에서 신세계 대 롯데, 롯데 대 신세계의 유통재벌 간 라이벌 구도가 생긴 겁니다.
 

▲ 한국 프로야구 최대 라이벌, 삼성 대 해태

프로야구 초창기 최대 라이벌은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였습니다. 삼성그룹의 자금력을 기반으로 김시진, 이선희, 장효조, 이만수, 권영호, 김일융, 류중일, 김성래 등 초호화 선수로 구성된 삼성 라이온즈는 늘 우승 후보였습니다.

반면 해태는 당시 가장 가난한 구단이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선수 14명으로 구단을 꾸릴 정도였으니까요. 삼성이 돈과 선수들의 이름값으로 프로야구의 강자로 군림했던 반면에 해태는 코끼리 김응용 감독의 지휘 아래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김준환, 박철우, 이상윤 등 삼성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는(물론 이 선수들도 레전드입니다) 호화 선수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삼성과 해태의 경기는 늘 치열했습니다. 해태의 연고 호남지역은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시절부터 정치경제 사회적으로 차별과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게다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민간인을 학살하며 정권을 차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와 전두환은 대구·경북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대구)과 해태(광주)의 경기는 야구 이상의 '무엇'이 있었고, 당연히 경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은 세 번 맞대결(1986년 1987년 1993년)을 가졌는데, 해태가 모두 승리합니다.

▲ 최동원과 선동열은 3차례의 맞대결을 펼쳐 1승1무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1986년 4월 첫 선발대결에서 선동열이 1-0 완봉승을 거뒀지만 4개월 뒤 두번째 대결에서 최동원이 2-0으로 설욕했다. 이듬 해 마지막 대결에서는 최동원과 선동열이 연장 15회까지 혈투끝에 2-2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지만,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한국 프로야구 또 다른 라이벌, 해태 대 롯데

과거 롯데와 해태는 제과업계 1∙2위를 다투는 경쟁자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 프로야구 원년, 야구팬들은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를 라이벌로 여기게 됩니다. 해태와 롯데 팬뿐만 아니라 구단주와 선수들도 승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이벌 대결에서 이긴 날에는 구단주가 선수들에게 회식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태와 롯데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고 맞붙은 적이 없습니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9회나 우승하며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롯데는 투수 최동원의 역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84년과 박동희 염종석이 활약한 1992년을 제외하곤 우승을 2회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롯데는 성적도 들쭉날쭉했습니다.

그런데도 해태와 롯데가 라이벌 구도를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전설의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해태)의 맞대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선수는 최고 투수의 자리를 놓고 세 번 맞붙어 서로 1승 1무 1패의 승패를 나눠 가지며 라이벌 구도를 이어갔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 구도만으로도 롯데와 해태, 해태와 롯데는 한국 프로야구 최대의 라이벌로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각인됩니다.

물론 두산과 LG가 서울 연고 팀으로, SK와 KT가 이동통신 업계 경쟁자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결했습니다. 하지만 삼성과 해태, 롯데와 해태 라이벌 구도에서만큼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진 못했습니다.

▲ /그래픽=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한국 프로야구, 이야기를 먹고 산다

스토리 텔링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와 롯데는 프로야구판에서 새로운 라이벌로 내세울 만 합니다. 우선 두 팀 모두 우리나라 항만 도시를 대표하는 인천과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습니다. 인천과 부산은 우리나라 야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도 인천, 구도 부산으로 불릴 만큼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호타준족으로 꾸준한 성적을 올린 추신수 선수가 부산 출신입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토론토에서 팀 내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가 인천 출신입니다.

인천과 부산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특히 물류 산업에서 인천과 부산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부산이 항만 규모와 화물 물동량에서 인천을 압도하고 있지만,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을 앞세워 항공 운송 물류에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산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며 인천국제공항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공항과 항만을 기반으로 하는 인천과 부산은 정치∙경제에서 숙명의 라이벌 도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지난 40여년 동안 신세계와 롯데가 우리나라 유통업계 지존 자리를 두고 벌인 이야기를 더하면 , 신세계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새로운 라이벌로 떠올랐다는데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듯합니다. 야구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신세계와 롯데가 벌인 40년 유통업계 전쟁사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픽=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 백화점 대혈투 - 롯데, 백화점 고지전에서 승리하다

롯데그룹은 1979년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롯데백화점(당시 명칭 롯데쇼핑센터)을 열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신세계, 미도파, 새로나, 코스모스, 화신 백화점 등 고만고만한 중소 규모의 백화점들이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룡 롯데백화점이 등장한 것이지요.

롯데백화점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백화점 1위는 신세계였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1930년 일본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으로 출발했습니다. 1963년 삼성그룹이 신세계를 인수하며 신세계는 백화점 업계의 선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데백화점은 등장하자마자 영업 첫해 45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신세계를 따돌리고 백화점 1위로 등극합니다.

이후 롯데는 잠실점과 부산 본점, 영등포점, 창원점, 광주점 등 전국 주요 도시 상권에 백화점을 입점하며 백화점 분야에서 앞서나갑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는 2020년 백화점 매출액 2조6550억원 영업이익 3280억원을 올리며 백화점 업계 1위를 차지합니다. 반면 신세계는 매출액 1조4598억원 영업이익 1269억원을 올려 2위 현대백화점(매출액 1조7504억원 영업이익 1986억원)에 뒤진 3위에 그칩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백화점 업계 전체가 매출이 부진했지만, 백화점 분야에서 롯데의 1위 자리는 쉽게 넘볼 수 없을 듯 보입니다.

▲ /그래픽=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 대형마트 대전투 - 신세계, 이마트 앞세워 대형마트 진지전에서 승리하다

롯데에 백화점 1위 고지를 빼앗긴 신세계는 1993년 대형마트 이마트를 열며 반격을 가합니다. 이마트를 앞세운 신세계의 속전속결 방식의 반격과 진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 기갑부대와 전투기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마지노선을 돌파하고 유럽 전역을 장악해 진지를 구축하는 기세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신세계는 서울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 곳곳에 매장을 엽니다. 때마침 임금 상승과 소비 욕구 증대로 대형마트를 찾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대형마트는 전통시장의 상권을 잠식하며 빠르게 성장합니다. 게다가 대형마트 시장은 백화점 시장보다 몇배나 더 컸습니다. 고소득층이 주된 소비자인 백화점과 달리 생필품 소비가 이뤄지는 대형마트가 소비자의 주된 소비처가 된 것입니다.

롯데는 1998년 롯데마트를 앞세워 뒤늦게 대형마트 사업에 뛰어들지만 이미 이마트가 주요 전략적 전술적 요충지에 굳건히 구축해놓은 이마트 진지에 막혀 대형마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2020년 매출액 6조390억원 영업이익 190억원을 올려 1위 이마트에 한참이나 뒤진 2위를 차지합니다. 지난해 롯데마트의 영업이익 190억원은 2014년 이후 6년 만에 겨우 거둔 흑자였습니다.

반면 이마트는 매출액 14조2137억원 영업이익 2950억원을 기록하며 롯데마트를 멀찍이 따돌리며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킵니다. 대형마트 전투에서 2위로 밀려나 있는 롯데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질 만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 사진=인천일보DB

▲ 진지 습격전 - 롯데, 신세계 인천점을 기습 공략하다

신세계는 비록 백화점 시장에서 롯데에 밀리는 형국이었지만, 대형마트 시장에서 선전을 바탕으로 유통업계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롯데에 백화점 전체 매출액이 밀리고 있었으나, 신세계는 서울 강남점과 부산 센텀시티점, 인천점 등 알짜 매장을 앞세워 백화점 분야에서도 롯데와 경쟁 구도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1997년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서울 강남점과 부산 센텀시티점에 이어 매출 3∼4위로 신세계백화점 트로이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인천종합터미널과 인천지하철 1호선 역과 연결된 교통요지에 있어 경쟁자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이 같은 입지 조건을 기반으로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인천에서 확고한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도 약점이 있었고 강력한 로마군단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롯데는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위치한 인천종합터미널 부지가 인천광역시 소유라는 약점을 공략했습니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1997년 20년 장기임대 계약을 맺고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데가 이 틈을 파고든 것입니다. 2012년 9월 롯데는 인천시로부터 인천종합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90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신세계는 롯데와 인천시의 접촉을 모른 채 인천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그만 기습 공격을 당한 셈이었습니다. 신세계는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인천점 사수를 위해 발버둥 치지만, 2017년 11월 대법원 민사 3부는 신세계가 인천시와 롯데를 상대로 제기한 '인천종합터미널 부지 소유권 이전 등기 말소 청구 소송' 최종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고 롯데의 손을 들어줍니다.

신세계로서는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지만, 롯데 입장에선 우리나라 3대 도시인 인천에서 신세계의 진지를 빼앗았을뿐더러 신세계가 구축해놓은 백화점 기반시설까지 전리품으로 챙긴 승리였습니다.
 

▲ 끝나지 않은 대결 - 신세계 SSG 랜더스 인천상륙작전 선언

신세계의 인천 연고 SK 와이번스 인수로부터 시작한 유통재벌 라이벌 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길어졌습니다. 이제 다시 프로야구로 되돌아와 끝맺음을 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3월 5일 신세계그룹은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단 이름을 '쓱(SSG) 랜더스'로 확정 발표했습니다. 인천 일각에선 랜더스라는 구단 이름이 인천상륙작전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며 인천상륙작전 이면에 있는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이 떠오른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구는 야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프로야구는 이야기를 먹고 삽니다. 랜더스라는 구단명에서 굳이 6·25전쟁의 비극을 떠올려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야구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기를 제안드립니다.

신세계는 지난 12일 로고와 엠블럼 등을 공개했습니다. '쓱 랜더스' 구단의 메인 엠블럼은 우주 착륙선 이미지가 있습니다.

신세계그룹은 “신대륙의 발견이나 달 착륙과 같은 역사적인 착륙(Landing) 후에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듯, 신세계그룹도 ‘쓱 랜더스’를 통해 대한민국 야구의 판을 바꾸고 인천에 새로운 승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세계 측은 프로야구에서 웃고 즐기고 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다는 겁니다. 앞서 프로야구가 이야기를 먹고 산다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한편으로 그 말에는 롯데에 백화점 인천점을 빼앗긴 오욕을 씻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듯합니다. 물론 이 역시 이야깃거리일 뿐입니다.

인천에는 롯데와 신세계 두 유통업계 라이벌이 소유한 부지가 여럿 있습니다. 롯데는 송도국제도시 롯데몰 부지에 오피스텔과 상가를 건설한 채 쇼핑몰과 영화관 건설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단 '쓱 랜더스'를 출범시키며 인천상륙작전을 선언한 신세계는 청라 스타필드와 구월동 이마트 부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통업계 양대 산맥이 앞으로 프로야구에서 펼칠 라이벌전이 관심을 끄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족이지만 신세계 SSG 랜더스가 부산 사나이 추신수 선수를 인천 갈매기로 영입한 것은 앞으로 전개될 두 유통재벌간 프로야구 라이벌 대전을 알리는 서막이 아닐까요?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