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써넣는다. 일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빛나는 세상을 향해 가자고. 어떤 남인지 어디에 있는 남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피터지는 경쟁을 이겨내고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는 승리가 곧 성공인 비정한 시스템을 넘어 천천히 낮게 가더라도 서로서로 도와 너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고. 생각만으로도 바람직하고 가슴 따뜻한 꿈을 품은 공모는 선정의 영예를 안기 위해 당차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리고 다른 공모와 피말리는 경쟁을 한다.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공모를 누르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공모의 희비극적 운명. 무슨 말인고 하니 지난 1월 말경 인천광역시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공간 활성화 프로그램 공모 사업에 응모했다.

마을공동체 공모는 주민들의 자발성이 중요하고 주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컨설팅 받았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년에 공모에 필요한 서류를 훑어본 필자는 공모 사업 계획서를 주민들에게만 쓰라고 하는 건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사람으로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의견을 썼다. 계획서는 행정이 보기 좋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업 개요, 필요성, 의의, 목적 (주민들 대부분은 뭐가 이렇게 복잡해, 다 그게 그거 아니야, 라고 반응한다)에 대한 서술을 모두에 쓴다. 이어 육하 원칙에 입각해 언제, 어디서, 누구랑,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계획을 잘 써넣어야 한다. 어쨌든 그 많은 걸 채워 넣고 공모 경쟁에서 살아남아 공사까지 마무리되고나면 결산보고가 기다린다.

공모 시작부터 끝까지 작문 시험을 보는 기분이 떠나질 않는다. 그 모든 걸 주민들이 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행정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져야하는 행정으로선 더하면 더했지 덜하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을 것이다. (막상 행정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니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공모가 없어져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떤 일은 공모 방식으로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힘들지 않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는 거다. 물론 도착이 최대의 목적인 사업도 있다. 그래서 반도버전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거나 대륙버전의 흑묘백묘론이 있지 않겠나. 그러나 또 어떤 일은 과정이 목적보다 더 중요하고 어쩌면 과정 자체가 전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이 되기 전 주민으로 공모를 해 본 후 문제점이 파악되면서 공모보다는 공론으로 마을의 필요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모는 행정편의적인 방식으로 돈을 가진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온전히 마을의 필요를 담을 수 없다고. 그 입장은 공무원인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각자도생으로 펼쳐지는 피튀기는 무한 경쟁에 지친 영혼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다같이 잘 살아보자고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그 공동체 사업을 잘하기 위해 또다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마을공동체 사업만 그런 게 아니라 중앙, 지방, 공공기관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식을 온통 공모로 끝장 볼 기세다. 공모 공화국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공모의 꿈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데 있다. 다르게 생각할 줄 모르면 최소한 다른 결과를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고화숙 인천 부평구 청천2동 주민자치지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