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우수도 지났다. 간간이 영하의 날씨지만, 봄이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건물 외벽 아지랑이에서, 따스한 한낮 반팔 차림으로 산책하는 젊은이를 보며 우린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생계 걱정이 더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봄은 남 얘기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것이 또 남북관계다. 3년 전만 해도 판문점의 봄, 평양의 가을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여름을 기대하던 꿈은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판문점의 감동을 뛰어넘는, 문대통령의 평양 능라도 5_1경기장에서의 연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두 정상이 했던 다짐.

이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도 잠시,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미국의 허락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남측을 보며 급기야 북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고, 이제 남북관계가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남측 태도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는 여지는 남겼다. 북은 그 전제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들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이런 북의 바람을 외면하고, 오히려 훈련을 강행함으로써 전시작전권 반환의 전제 조건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 기회로 삼으려 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미국 측의 반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북의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라는 명분도, 전시작전권 임기 내 반환이라는 실리도 다 잃은 꼴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최종 결정은 아니라지만, 기간과 규모를 대폭 축소해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연합지휘소연습(CPX)으로 대체할 예정이라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코로나19 방역을 핑계 삼아 중단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문재인정부 성공 중 하나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것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점이다. 대미관계를 복기해 보면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정권 최고로 국방비를 증액한 가운데 그 상당액이 미국 무기를 사들이는 데 쓰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했음에도 한미워킹그룹이라는 족쇄에 채여 남북 간 인도적인 교류와 협력마저 봉쇄당해 왔다. 전시작전권 임기 내 반환도 물건너갔고, 이명박_박근혜정권에 의해 차단당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도 미국의 제재로 물거품되었다.

문재인정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하반기면 사실상 대선 국면에 돌입하기에 실제로 일할 시간은 반년 정도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한두 가지 성과는 내세울 수 있다고 볼 때, 문재인정부의 성과는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과 돌파구를 연 남북관계를 꼽아야 하지 않겠는가!

바이든정부가 들어선 미국과 기울어진 한미관계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반 조각과 만연된 코로나19 방역에 여념이 없다. 바이든정부와 관계설정에서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 비위 맞추다 끝나버린 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며칠 전 CNN의 보도에 따르면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13% 인상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13%는 미치광이 전략가인 트럼프가 말도 안되는 50% 인상안을 들고 나오자 깜짝 놀란 문재인정부가 트럼프를 달래기 위한 안이었다. 2011년부터 트럼프 임기 초기인 2018년까지 8년 동안 방위비분담금 평균 인상률은 고작 2.5% 정도였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미국에 대해 이제는 당당히 논리로 맞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대들면 미국이 화내지 않을까,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심기외교, 패배주의를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도 이제 세계 6위 국방강국이자, 경제력 순위도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 첫 번째 계기가 이번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선언이고, 두 번째가 방위비분담금 협상이다. 트럼프의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13%가 아니라 한 자리수로 줄여야 한다. 임기가 사실상 끝나가는 문재인정부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 전시작전권 반환도 차기 정권으로 넘어간 마당에 방위비분담금 협상도 차기 정권으로 넘기지 말란 법도 없으니 말이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원회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