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실시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에 남을 여러가지 사례를 남긴 선겨였다. 민주당의 앨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부시 간의 대결에서 전체 투표에서는 고어가 50여만 표 앞섰으나 선거인단 표에서는 266대 271로 부시가 앞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에서 일반투표 537표 차이로 29표나 되는 선거인단 표가 부시에게 넘어가서 고어 쪽에서는 재검표를 요청했다. 부시 후보의 친동생이 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개표에서 부정소지가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검표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보수 판사가 다수였던 대법원에서도 '재검표 불가'의 판결을 내렸고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이를 수용했다. 미국 전체의 여론은 물론 대표적인 언론들까지 재검표를 해야 한다는 쪽이었으나 당사자인 고어 후보는 국민의 단결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평민이 된 고어는 그 후 기후 문제의 선구자가 되어 2006년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상을, 2007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9년 9월24일자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고어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과 기구가 준비되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고 낙관론을 펴면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욕타임즈 전면에 걸친 자상하고 현실적인 기후변화 대처의 기고를 통해서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다른 대통령을 뽑아야 되겠다는 숨겨진 고어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전부터 기후 관련 정책과 기후 담당 고위직 인선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결정한 파리기후협약에 즉각 재가입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국내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기후'를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로 고려하며 '국가 기후 태스크포스'를 신설해서 21개의 연방정부 부처와 기관의 기후위기 대응을 주도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석유와 셰일가스 업체에 불하한 연방정부 소유 토지를 환수하고 화석연료 개발 제한구역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다가오는 4월22일 세계 지구의 날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기후정상회의를 열겠다고도 했다. 미국 정부의 외교역량도 기후문제에 집중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느껴진다. 20년 전 대통령 자리에 다가섰다가 깨끗이 물러난 앨 고어를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떠나서 그의 뜻을 받아 모시는 것 같은 바이든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신용석(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