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실시하는 '예방적 살처분', 정말 괜찮은가요? 우리는 과학적 방역을 원합니다.” 산안마을 주민들.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대책인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실효성 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산안마을(山安·야마기시즘 경향실현지)의 신념이 언론을 통해 재조명받았기 때문이다. 산안마을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인증하는 동물복지축산농장이다.

1984년 이후 자신들의 방법으로 산란계 농가를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AI가 발병하지 않은 '청정마을'이다. 야마기시즘은 일본인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 1901~1961)가 전후 일본에서 고안해 낸 기조로, 전쟁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영원한 행복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 야마기시즘이 발족했다. 야마기시즘은 무소유와 공용, 공활을 원리로 삼는다.

화성 향남읍 구문천리에 실현지가 들어선 것은 1984년. 김상보 산안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1981년 야마기시즘 특강을 접했다. 김 대표는 “저렇게 좋은 세상이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에 바로 고향 구문천리에 뜻이 맞는 여섯 가족으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그리고 37년. 국내에서 유일한 야마기시즘 사회경향실현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양계사업은 전국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고품질 유정란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산안마을은 대부분 산란계 농가에서 도입한 '공장식 운영'과 달리 자체적인 기준을 적용, 운영한다. 1㎡당 4마리 이하라는 자체적인 기준을 적용해 밀집도를 낮췄다. 계사는 햇볕이 잘 들어오고 바람이 잘 통하게 설계돼 있어 쾌적하다. 또 친환경 농법 등으로 닭들의 면역력을 높이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활동력이 떨어지는 산란계를 따로 관리한다. 이런 노력으로 2017년 살충제 파동이 전국을 흔들 때도 산안마을 달걀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 1월20일 오후. '산안마을 예방적 살처분 지역에서 답을 찾다'란 화성지역 시민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선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반경 3㎞ 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 명령을 받은 최근 산안마을 사례로, 예방적 살처분 문제를 짚었다. 유재호 산안마을 대표는 “AI는 지금 잠깐 나타난 감염병이 아니다. 이전부터 거의 매년 발생해오던 문제”라며 “그런데 지금 축산정책은 단순 살처분으로 악순환이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AI가 발생한 농장에선 보호지역으로 분류되는 반경 3㎞내 사육하고 있는 동물을 모두 폐기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AI의 전파력, 지형적 여건 등에 따라 지자체장이 살처분을 축소하거나 제외할 수도 있다. 실제 현장에선 이를 고려하지 않고 살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안마을은 지난해 12월23일부터 살처분 명령을 계속 받는 상황이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 회장은 “살처분 필요하다. 하지만 살처분에만 의존하니 문제”라며 “살처분은 살처분대로 시행해야겠지만, 그 범위를 축소하는 등 효율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은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은 대량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윤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세금 투입으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예외 조항이 있는데도, 지자체는 정부의 권한이라며 떠넘기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듯 모두가 아는 방역대책을 정부만 외면하는 듯해 안타깝다. 산안마을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AI가 아닌 정부의 무차별적 강제집행이다. 정부는 '방역대책'이라고 하지만, 대책은 없는 '강제집행'이 맞는 말이다. 정부는 십수 년 동안 AI가 발병하면 '예방적 살처분' 카드를 거리낌없이 꺼냈다. 오히려 살처분 대상지역을 넓혀가며 산안마을의 존립을 옥죄었다. 무차별적으로 동물을 학살하고 다시 사육하면 된다는 경제논리에 기반한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한 번도 '대책'다운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마을마저 벼랑으로 내몰았다. 40년 가까이 AI가 발병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들의 사육방식에서 정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책무인 것을. 오히려 그 오랜 기간 책무를 유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철새를 AI 범인이라 누명 씌울 것인지 답답할 노릇이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부장 fugo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