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인천 야구팬들을 넘어 인천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구도 인천을 연고로 한 현대가 당시 프로야구단 유니콘스 연고지 이전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 이어 현대가 유니콘스로 구단을 인수했으나 겨우 4시즌을 보내고 서울로 가기 위해 임시연고지로 수원을 택한 것이다.

인천 중구 도원동 숭의야구장 앞에서 산 1000원짜리 김밥 한 줄을 저녁끼니로 먹으며 현대 유니콘스 응원가를 불렀던 인천 야구팬들은 그걸 뒤통수 맞았다고 표현했다. 21년이 지난 지금 SK의 느닷없는 와이번스 구단 매각 소식을 놓고 인천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현대에 이은 역대급 배신행위라는 성토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5일 인천시민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SK와이번스의 신세계 이마트 매각설을 마주했다. 그동안 스포츠단 매각은 모기업 재정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인천만 해도 삼미, 청보, 태평양이 그랬고 타 지역만 보더라도 쌍방울, 해태 등도 마찬가지였다. 전례로 비춰볼 때 코로나19에도 큰 타격이 없었던 SK텔레콤을 모기업으로 하는 SK와이번스 매각은 사실 뜬금없는 선언이라고 야구계도 보고 있다.

인천시민들에게 있어 SK와이번스는 너무나 각별한 구단이었다. 현대 유니콘스로 상처받은 인천에 SK가 인천 연고로 창단한 와이번스에 대한 애정은 클 수밖에 없었다. SK와이번스는 인천시민이 야구로 하나되는 데 한몫했다. 응원구호 '인천SK'로 지역 명칭을 처음 넣었고, 야구단 중 처음으로 선수 유니폼에 인천이라는 도시이름을 박아 지역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SK와이번스를 시작으로 현재 모든 구단이 도시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1년 역사에서 SK와이번스는 시민들의 응원을 발판 삼아 신흥 왕조 역사를 이어갔다. 코리안시리즈 4번의 우승은 선수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인천SK'를 외친 시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다. 이런 이유로 미국으로 떠난 김광현 선수를 비롯해 최정, 박정권, 김강민, 이재원, 한동민 선수 등은 단순히 SK선수가 아니라 팬들이 지켜줘야 하는 인천 선수가 됐다. 또 수많은 인천 야구 꿈나무들이 SK와이번스라는 인천 선수를 희망하며 열띤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SK와이번스는 SK만의 것이 아니라 인천의 것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런 분위기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SK와이번스 매각으로 인천은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됐다. 구단 프런트도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해 패닉에 빠졌고 인천시민들도 갑자기 내려진 SK 통보에 어리둥절했다.

인천 야구단 매각을 결정한 SK기업 사정이야 어찌됐든 인천과 야구팬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SK의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매각 기사가 언론에 터져나온 하루 뒤인 다음날 SK텔레콤은 곧바로 입장문을 냈고, 신세계 이마트로의 1352억원 매각은 사실로 확인됐다. 매각대금이 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과 비교할 때 헐값으로 표현되고 있다.

SK텔레콤이 발표한 입장문도 시민들을 이해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한국스포츠의 격을 높인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없었고, 새로운 주인이 될 신세계 이마트에 대한 기대만 나열했다. 여전히 매각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런 와이번스 매각을 둘러싸고 SK의 인천 홀대론도 나올 만하다. 와이번스 팬카페에는 인천 야구팬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거나 몇 년간 한자리에서 응원했던 팀이 단 이틀 만에 팔렸다며 SK 태도를 지적하는 글도 올라왔다. 휴대폰을 해지해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팬들도 적지 않다.

어느 누가 인천을 '물'로 본 것 아니냐는 성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SK와이번스는 SK가 아닌 응원하는 인천 중심인 야구팬들로 완성된 구단이다. 사과 한마디 없는 구단 매각에 야구팬들이 또는 인천시민들이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그러나 예의없는 이별에는 쓴소리가 쏟아지는 법이다. 아름답지 않은 이별에 아름다운 송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잘 가라 SK. 배웅은 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인천은 신세계 이마트다.

/이은경 사회부장 lott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