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 전에는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라 했다. 선거 유세장은 대개 국민학교 운동장이었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좀 드는 철봉대 주변으로는 으레 막걸리판이 벌어졌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잔치판이었다. 그 무렵 신문 만평에도 떴다. 보릿고개 허기에 지친 어린 소년이 선거 막걸리에 취해 헤롱헤롱 하는 얼굴이다. 돈있는 후보자가 나눠주는 고무신 한 켤레도 빈한한 농가들에서는 더 없이 요긴했다. 고무신 아니라 수건 한 장도 아쉬운 가난한 나라였다. 어찌보면 소득 재분배 효과는 좀 있는 부정선거였다. 그 가난한 나라가 수십년만에 경제대국 반열에 섰다. 이에 걸맞게 막걸리_고무신은 현금봉투 시대를 거쳐 이제 '표퓰리즘'으로까지 진화했다. 그 당시 막걸리나 고무신을 돌릴 여유가 없는 야당 후보들이 연단에 올라 소리쳤다. “유권자 여러분, 막걸리는 사양말고 마시되 표는 딴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예전 기자들 사회에 전해 오던 금언(金言)을 떠올리게 하는 호소다. '먹고나서 조져라'

▶지난 주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막을 내렸다. 역대 대한체육회장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기라성급이다. 여운형, 신익희, 조병옥, 이기붕, 이철승, 정주영, 노태우… 절차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때마다 권력의 낙하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선 체육인들의 표에 좌우되는 완전한 선출직으로 바뀐 모양이다. 올해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는 2170명의 체육인들이 한 표씩을 행사했다. 대한체육회 대의원, 회원 종목 단체, 17개 시_도체육회, 228개 시_군_구체육회 임원, 선수, 지도자, 동호인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선거인단이다. 4명이 후보로 나선 이번 선거는 정치판을 뺨치는 혼탁한 선거였다고 한다. 비방과 인신공격, 고발과 맞고발이 난무했다. “체육회장 감투를 그토록 열망하는 '무늬만의 체육인'들을 구경한 느낌”이라는 관전평도 나왔다.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의 하이라이트도 역시 '표퓰리즘'이었다. 여권 정치인 출신의 후보가 선거를 4일 앞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생존 위기에 몰린 체육인 10만명에게 1000만원씩 현금 1조원을 나눠주겠다는 공약을 터뜨렸다. 역시 5선 국회의원 출신 다운 정치 감각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걸리나 고무신처럼 후보자가 내놓는 돈이 아니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 시설 건립 사업비와 쿠폰_상품권 사업비 및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비 등을 체육인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래도 1000만원이 어딘가, 이로써 선거는 끝났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그 '1000만원 후보'는 2등도 아닌, 3등에 머물고 말았다. 그 1000만원을 선거 전에 나눠줬으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체육인들은 나중에라도 마실 수 있었을 막걸리보다는, 또 다른 무엇에 표를 던진 것인가.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